“(전략)모든 예식 다 접고 우리는 동복형제(同腹兄弟)! ‘전하(殿下)’라 하지 않음은 ‘한 이불 속 형제’이기 때문에 공식문서 아닌 사신 몇 자를 보내오. 성미 서로 아는지라 차라리 받는 편에서 편하도록 아버님 등극 때의 기쁜 심정으로 받아 주게나.”
“ 경진(庚辰:1400년) 이후 한양 떠나 ‘여러 곳에 옮겨 지내며(跨越千山萬水:과월천산만수)’ 세상 보는 눈 많이 바꿨고 동생 왕위 20년, 나 역시 20년 고초 놓을 길 훤히 보이지오. 이래저래 나 ‘한내’ 건너지 않을 게며, 자손들 역시 ‘벼슬 길’ 넘보지 않기를 바라지.”
“(중략) 나 전주 정착하려네. 본관 전주라서가 아니라 목숨 걸고 나라 열어 아버님께 충성했던 공신 심효생(부유)-오몽을(보성)-이백유(완산)는 갔지만 그 자손과, 황거중(우주)-만육 최양(전주), 최용갑(전주)도 거기 살며, 이들 자손 덕 바라는 건 아니지만 초로의 낙이 될 것 같네. 나 원래 소 좋아했던 사람 마침 와우산(臥牛山) 아래 북쪽으로 확 트인 땅 뜻 깊은 구만리(九萬里)에서 지내려네.(이하 생략)”
이렇게 자원하여 1420년까지 사셨다. 전주이씨 대종약원전주지회나 금상동 광감재, 봉동 봉강사원, 서산 숭덕사에 물으면 첩첩이 쌓인 역사와 전설 제대로 보일 것이다.
악인↔선인 있지만 욕심, 잔인성, 고집, 비행…한 겹 한 겹 벗겨내면 결국 누구나 양심이 드러난다.
안아주는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 심효생 외사촌이 황거중, 거중 고모부가 최용갑, 용갑 외손자가 이백유, 백유 고모가 유습 며느리, 유습 사위가 심효생, 오몽을은 최용갑 조카사위다. 이런 인맥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굵은 밧줄들로 이성계 제4남은 아버지와의 연이 깊은 고장에서 일생을 마친 600년 흔적 역사가 여기저기에 묻어있다.
전북 10인 국회의원 모두가 더불어민주당원이듯 조선 초 전주 사람들 중 국기(國基) 세운 정치인이 많다. 사람은 화합을 중시해야지 고집으로는 불행을 자초하더라.
완주북부 지명과 시설에 ‘봉상(鳳翔)-봉강-봉계-봉곡-봉동-봉림-봉산-봉성-봉실-봉양-봉정-위봉’…이게 모두 평화·자유를 고대하는 이름이다.
회안대군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선배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타고나온 소를 잊고 온 것으로 봐 온정 많은 성품임을 알 수 있다.
역사는 내일의 실수를 덜어 주는 거울이다. 형영상동(形影相同) 거울 거짓말 하지 않는다. 이게 역사의 교훈이다. 해치는 ‘사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싸우거나 정직하지 못할 경우 응징하는 걸로 알려졌다’ 이래서 사헌부는 해치(獬豸)를 표상으로 삼았다.
전주이씨 시중공파 이경동은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고 추탄 종중 재정 넉넉하다니 묘 앞에 해치상을 세움이 바른 종사요, 한 번 보고 들으면 얼른 알아듣고 할일 해 놓아야 난 사람. 수저 들 힘 있을 때 멋진 집안 소리 이끌어내자.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