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전라(全羅)’나 ‘완주(完州)’ 이름 좋더니, 여기에 부분 지명 중 지금도 잘 되고 미래 융성하기 바라는 금(金)자 들은 ‘금명(金名)’이 많다. 금계(상관면), 신금리(삼례), 금곡(비봉), 금당(운주), 금평(이서·화산).
이러기에 여기서 얘기하는 ‘금지팡이 전설’은 어느 한 곳이라고 꼭 찍어 말하기 어려우나 좋은 내용이니 받아들이는 쪽 마음이 첫째이다.
▲밥 빌어먹던 시절! 봄이면 여남 살 먹은 아이가 밥 얻으러 다니는데, 얼굴을 보니 박복해 보이지 않아 “야! 너 몇 살이냐? 오늘부터 바가지 놓고 내 집에서 심부름하며 함께 살면 어떠냐?”하고 물어보았다.
소년은 귀를 의심했다. 대답 얼른 나오질 않아 멍하고 서있으니, 부엌의 부인이 “추운데 할 말 있으면 데리고 들어오시오.”. 결국 불러들여 우선 조반을 먹이고 데운 물로 목욕시킨 다음 아들 옷으로 갈아입히니 번듯하여 내외는 마주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이들을 불러들여 “오늘부터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라” 이런 당부를 마쳤다. 이 애 이름이 ‘금동(金童)’이다. 밭에 데리고 나가면 풀·곡식을 제대로 구별하고, 산에 나무가면 삭정이만 주워 지고 오며, 짐승 먹일 꼴은 부드럽고 연한 걸로만 베어 온다.
곡우 무렵 못자리철에 하는 말 “어르신 올 못자리는 무논에 하되 곱빼기로 하시지요.” 주인 되묻지 않고 하자는 대로 했다. 그런데 비가 내리지 않다가 소서 무렵에야 내렸으나 모가 없는 모내기철 금동이네만 마쳤고, 심고 남은 모를 마음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가을에 다른 동네는 흉년 빈들이었으나 금동이 마을 들판은 누런 금빛 풍년이 들어 이 마을을 금평(金坪)이라 했다.
주인은 하도 신기하여 그해 겨울부터 공부만 시켜 문과에 장원급제를 시켰다. 금동이 50대에 호조참판이 됐고, 늘 작대기만 짚고 살면서 자기를 먹이고 길러 출세시킨 어른을 잊을 수 없어 선물 ‘금지팡이’를 해가지고 내려와 팔순 잔치를 베풀어 만자 앞에서 금지팡이 들고 춤추게 했다.
인과응보. 농촌 완주의 자랑스러운 전설이다. 세상에 공것이 없다. 심은 대로 거두고 베푼 대로 되받는다. 다른 시군은 주민 기록관(記錄館)과 유물관(遺物館)을 세웠다. 고산향교가 있는데 유림 중 갓 있는 분 하나도 없다.
부모 유품을 버렸는데 2,900만원이 쓰레기장에서 나왔다. 이 돈 임자 누구일까. 발견자? 국고? 발견자는 돈뭉치 속의 은행 쪽지를 추적해 자식을 찾아 돌려줬다. 버린 자식 행위로 봐서는 과분한 대접이다.
비봉면 금곡(金谷)을 ‘소노실’이라 하는데 정확한 이름은 ‘쇠를 녹였다’하여 이란다. 『한국지명총람(완주편)』을 보면 소멸된 지명이 많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되면서 全羅南道는 있으나 ‘全羅北道’는 사라졌다. 이를 어떻게들 생각하나! ‘벌릴 羅’자인데 버려졌다. 지명도 국가유산이다. 성찰(省察)에도 사람 등급이 있다. 사람 키워 성공하자.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