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노인의 몸을 수색하여 지갑 열어볼 권한 아무에게도 없고, 자녀들 역시 함부로 펴 볼 일이 아니라 당사자의 말이 아니면 누구도 모른다.
A노인의 지갑. 정초 아들이 준 5만 원권 석장을 아끼고 간직, 돈 돌고 돌지 못해 숨이 막힌다.
B노인의 지갑에는 닳고 낡은 1만 원권 단 한 장. 사자 어금니 만큼이나 아끼는 돈이다.
5만 원권을 10,000원 짜리로 바꿔 넣고 쓰는데 남에게 줄 때마다 ‘이것도 적선’이라며 깨끗한 돈을 먼저 꺼내준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남은 그 한 장은 접고 접힌 자리 1/3이 찢어졌다. 낡고 헐었기에 마지막까지 지갑 지킴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자 간병하던 딸이 집에 들렀을 때 고맙고 안쓰러워 ‘택시 타고 가라.’며 지갑을 펼쳐 건네준 돈은 ‘닳고 닳은 1만 원권’ 그 한 장! 부녀간의 정이다.
세상에 B노인만 이러하랴. 젊어선 먹고 살며 애들 가르치고 농자재 사려니 지갑 비었으며, 늙어 수입 없으니 텅 빈 지갑이다. 노인에게 주는 선물은 옷이나 기능식품이 아니라 현금이 최고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2024년 5월 19일 별세한 홍계향 할머니 장례식을 22일 시의료원에서 치르는데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향년 90세 홍 할머니는 2014년 6월 중원구 성남동에 4층 집을 세워 살다 기부(현재 시세 12억원)했는데, 성남지역 저소득층을 위해 쓰라는 이유이었다.” 노점상, 지하철 청소,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모은 재산을 어려운 이웃에게 건넨 홍계향 할머니의 미담이다[출처 ‘행복한 유산’ 기부자 별세(생활공감 빛고을:작성자 김석순].
세상에 이런 노인이 있지만 흔한 얘기는 아니다. 한해 2~3억원 번다는 의사들이 정부와 싸운다.
2024년 5월 23일 열린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 주제가 ‘지금의 실천이 내일의 역사입니다’이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2월 6일 프랑스 소르본대학을 방문했을 때 ‘역사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역사로부터 뭣을 배웠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의 생각과 실천이 바로 내일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는데, 여기서 따온 주제라고 노무현 재단 측 설명이다.
확실히 맞는 말씀이다. 삼촌-외숙모-당숙-이모-장인 만나면 현금 드려 빈 지갑 아니게 해보자. 70년 전 청량리 어느 집 문간방 양공주가 준 100원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1945년 해방 후 얼마 아니 돼 고산 장에서 외할아버지가 주신 1원을 가지고 콩가루 넣은 우무 한 그릇 사먹은 생각이 살아있다. 이용규 ‘완두콩’ 월간지 사장은 글 한 꼭지마다 얼마의 돈을 통장에 넣어줘 요긴하게 썼으므로 피차 잊지 못할 인연이다.
적은 돈으로 사람의 맘을 사라. 몇천 원일망정 친구에게도 건네줘 보라. 눈빛이 달라진다. 자동차 주유와 같은 이치이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