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고산초등학교 이미숙 교장 선생님과 완주교육지원청 전 박숙자 교육장 및 현 김난희 교육장님 감사합니다. 세 분은 ‘우공이산(愚公移山:우직한 노력으로 뜻을 이룸)’을 이룩한 분이요, 일정시대 일본으로 가져간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 2005년 10월 20일 되찾아온 쾌거’와 같은 수준의큰 일을 하셨습니다.
고산초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개교100주년 기념비’입니다. 커서 잘 보이고 자리 좋아 눈에 바로 뜨이지요.
기념비에 얽힌 수난사(受難史)가 있고 차차 전설까지 품어 안아 아름다운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2009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개교100주년 기념비’를 땅 위에 세웠습니다(총동창회장:박무성).
△그 후 하천정화사업 과정에서 물길이 학교 안을 자나게 됐고 △이 때 누군가가 “허허 이 비석 물속에선 1000년 가나 육지에선 100년 가기 어렵다.” 이런 말을 요리조리 그럴듯하게 하니 관계자들마다 ‘곧이듣고’ 100주년 기념비를 물 가운데로 옮겨 세웠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크니 누군가가 시기하고 저주하며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치마로 싸 올릴 ‘금니박’이란 여장부가 나온다.” 이 말이 뒤를 따랐습니다.
△물 가운데에 있어 특별한 수단을 갖추지 않으면 가까이 갈 수 없었지요. △이런 현실 문제가 솔솔 떠올랐으나 돌은 크고 물이 깊어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쁜 얘기는 가짜뉴스와 함께 날개를 달고 퍼지나 ‘미담가화(美談佳話)’는 내외간도 모르는 먹통 세상입니다. 2024년 2월 17일 달려가 보니 듣던 대로 물 밖에 잘도 세웠습니다. 제대로라면 사유 설명 안내판이 있어야 할 비석입니다.
‘치마폭으로 금니박…’ 귀신같은 예언이었습니다. 김난희-이미숙-박숙자의 성이 김,이,박 ‘치마폭’이라 했으니 여인이 분명한 예언이었습니다. 비석을 통해 통쾌한 꼴을 듣고 보니 옛일이 떠오릅니다.
▲개교 당시 처음 지은 교실에서 배웠고, 얼마 뒤엔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쳤지요. 이 건물 교육문화재로 지켜내지 못하여 심히 아쉽습니다.
▲일본인 교장 공적비를 묻었고, 1960년대 제 손으로 파 올렸으나 그 후 사라져 알 길이 없습니다.
교실 정면에는 메이지(明治)천황 사진이 있었습니다. 너른 운동장에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일본인 ‘와다나베(渡邊)’, ‘히라이시(白石)’ 선생 생각이 납니다. 1945년 학생=교사 한글(국어) 실력이 똑같았습니다.
6·25전쟁 때는 미군이 운동장과 교실에 주둔하며 학생들이 밀려났지요. 신학기 초를 9월 1일로 해 초등학교 다섯 달을 더 다니고 졸업했습니다. 고산초등학교 24학급 시절이 있었고 교실이 모자라 명륜당에서 공부했습니다.
3여걸에 경의를 표합니다. 내일부터 신학기 대성을 기도합니다. 쇠 지팡이 다를까 봐 들고 다니는 남자가 있는데 세 분의 보짱이 더욱 돋보입니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