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놀이터는 있으나 어린이가 없고, 봉동 모래톱에서 씨름하는 청소년 아니 보입니다.
1960∼1990년대 봉동초등학교 씨름단(團)이 있어 하나를 눕히고 두 번째 이기면 씨름 잘한다 쳐주는 바람에 소 따는 선수 많이 나왔습니다.
봉동 분은 축구경기 90분이나, 야구 9회 말 이런 긴긴 시간 경기보다 잡는 순간 확 뿌리치는 씨름에 익숙하고 평소 생활이나 업무처리 역시 ‘신속·정확·명료함’이 몸에 뱄습니다.
씨름을 마치고 식사시간이면 밥그릇 큰 쪽 앞에 앉았지요. 한 술 밥 귀한 때의 얘기입니다. 어머님 푸시는 밥그릇은 높았으니 본인 밥은 적어 허리띠를 졸라매셨지요. 옛 선수들은 이런 정경의 생각에 눈물이 돕니다.
『사도행전』 제9장 15절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 이 구절이 어머님 말씀으로 가슴에 콱 닿습니다. 세상에 그릇 많지요. 크면 많이 들어가고 작으면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주군 의원 3선이면 12년. 유권자 선후배 여러 동료를 사귀었습니다. 어려운 사정 받아들여 꼭꼭 담아주던 ‘도량 넓은 큰 그릇’이 많았습니다. 이분들께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자신이 먼저 ‘큰 그릇’이 돼 원하는 걸 받아 차곡차곡 담는 게 공약이요 순리입니다.
토기·석기·청동기·철기가 있었지요. 그릇은 사람의 분신, 재산, 생명, 권위, 신앙이었습니다.
선출직은 친구·지인·유권자가 무엇이든지 마음 놓고 담아 두는 ‘큰 그릇’이 돼야 합니다.
살림살이 최소 단위가 숟가락·밥그릇 아닌가요? 남부여대(男負女戴) 고향을 떠나면서도 가지고 가는 건 이것들이었습니다. 선출직은 ‘큰 그릇’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무덤 안에서도 그릇이 나오고, 왕실에서 쓰던 청자 귀물입니다.
노자는 ‘천장지구(天長地久:하늘과 땅 영원하다)’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세상에 함께 하는 것이 ‘그릇’이지요. ‘그릇 기(器)’에는 ‘입구 구(口)’자 여럿입니다. 많은 사람 ‘입줄’에 오른다는 뜻이요, ‘입을 채워줘야 한다’는 상형문자이기에 ‘큰 그릇이 되겠다’는 신념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가을바람 일어날 무렵이면 여름에 쓰던 ‘자기 밥그릇’ 대신에 찬탁에 뒀던 ‘주발’을 꺼내 썼지요. 주발은 깨지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의원이나 정치인은 의리와 지조가 중요합니다. ‘큰 주발’ 노릇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로 여기며, 바다를 ‘큰 그릇’으로 보던 선조님의 기상을 좇아 ‘해불양수(海不讓水)’ 큰 그릇 닮아야 합니다.
전북 새만금 완성이 ‘대기만성(大器晩成)’입니다. 특별자치도 새 그릇에 소복이 담을 새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릇 깨진 ‘사금파리’로도 썼습니다. 돝(돼지) 거세 알지요? 하하하…! 선거 벽보에 ‘큰 그릇 사진’을 올리면 당선이 확실합니다. 얼굴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표 적정을 해야 합니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