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근질근질 가려워 04시도 못 돼 눈을 뜨고 긁는데 긁을수록 더 가려워 참기 힘든 체형이나 다름이 없다. 2023년 12월 29일 만월 기우는 달빛이 서창을 넘어들자 엉뚱한 생각이 자꾸 일어나 이 글을 쓴다.
대학병원 진료 길에 아들·며느리 동행, 미안하고 고마워 ‘나 누군가’ 더듬어봤다. →esc 한평생 ‘더(加+)하고·빼(減-)고’보니 너머지가 영[(0):零]이다. 더 살면 뭐하랴. 이게 ‘진담’이다.
두메 분교 교사시절 꽃집 예쁜 처녀와 그 가족이 다정하게 대해 줘 감사한 일이었으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누가 잘못보고 ‘엉뚱한 헛소문을 내면 모두 망신이기에 처녀를 만나 “우리 앞으로 ‘오빠·오누이 수준’으로만 지내자고 굳게 다짐해뒀다. 아들 있는 유부남이 아닌가?
1969년 2월 이동발령이 났고, 12월 26일 꽃집 처녀가 차편 나쁜 먼 길을 찾아와 무척 반가웠다.
나 잘 방이 없어 탄광 자취방 임춘엽 선생 찾아가 일숙(一宿)을 하고 아침에 가니 아내 산고(産苦)로 땀을 뻘뻘 흘리나 조산원·산부인과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와 손님 차녀 놀라 산 붕어처럼 벌벌 떨다가 하도 다급해 허옥규 학생 어머님을 모셔다 삼 가르고 태를 처리했다.
못난이 멍청이 산모·첫딸 한꺼번에 둘 죽일뻔한 이 바보! 천하 여인들이 분개하여 돌팔매질 맞아죽어도 마땅한 사내이다. 이 일이 있은 지 54년. 오누이로 지내자던 soj와 작별하고 그간 감감소식이다.
남노송동 연탄 배달부는 아침마다 기분이 좋았다. 걸어 출근하던 시절 예쁜 처녀가 만날 때마다 웃음을 보낸다. 남루한 옷차림 배달부 그 얼굴에 연탄가루 검정이 묻어 광대 분장처럼 보였다. 자기 모습을 잊은 채 그 여자 지나가기 전 일찍 나와 기다려진다. 미소의 힘 이처럼 훌륭하다.
두메 교사를 안타깝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착각(錯覺)하지 않고 ‘남자의 고상한 윤리의식’으로 휘어잡아 교사의 권위를 지켜냈다.
당시 나를 붙들어 준 두 가지 요소는 초등학교를 졸업 후 한 해 동안 대학자 신암(愼菴) 선생의 교육을 받은 ‘자경심(自警心)’과, 사범대학(師範大學) 졸업 ‘자부심’을 기본과 상식으로 삼아 이겨냈던 지조(志操)의식이 있었다.
여중학교 두 곳과 남녀 공학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저 여학생 며느리 감…’이런 생각 손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학생(교원)인권문제’가 주목을 받는데 이런 법 없던 시절에도 마음의 죄 지지 않아 다행이다.
엄청난 충격 잊을 수 없어 12월이면 궁금한 사람 얘기를 자주한다. 서산에 지는 해 몇 뼘 아니 남아 더욱 그러하다. 서창에 비치는 달은 54년 전 산골 처녀 그 모습으로만 보인다. 이 처녀 ‘修女(수녀)일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淸純(청순)한 심성 그럴 가능성이 커 soj에게 새해 인사를 보낸다. 인사가 예의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