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위해 고치려는 야심이 개혁사상이다. ‘이래 두고는 아니 되겠다!’ 이러며 정치판에 뛰어든 이가 정치인. 전주 중심으로 전주이씨-경주이씨-우주황씨-남양홍씨 집안의 활동을 살펴본다. △전주 마전(전 완주군 우전면) 이백유는 조선개국공신 3등으로 이성계의 계열.
△이방간↔이방원은 형제간. 이성계 아들로, ‘정권’ 앞에선 부자간도 피투성이가 되는데 이방원은 아버지와 형(이방간)을 제쳤다. 이 와중에 이백유 오래 살지 못했다.
△경주이씨 이성중(李誠中)은 태종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으므로 전주이씨 ‘회안대군 자손’과의 관계는 더 깊이 살펴봐야 한다. 단종 복위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씨족간의 이합집산이 묘했다.
△이백유 손자사위가 사육신 이개이고, 이때 우주황씨 황장손도 단종 복위에 가담 처형당했으니 이씨↔황씨는 이심전심 정치관이 가까웠다. 동인-서인 당파 갈리면서 노선문제 거칠어지고 임진왜란을 통해 더욱 노골화했다.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중국과의 친명 외교에서 ‘같은 생각’일 때마다 결속력이 강해졌다.
△병자호란을 만나 우주황씨 황극효는 ‘청(淸)’자 쓰지 않고, 북쪽을 바라보지 않을 정도의 ‘배청사상’이 완고했다. 흐르는 세월 속 18세기 천주교가 들어오자 사교라 해 순교자가 쏟아져 나왔다. 서학에 겁먹은 쪽에서 동학을 일으켰다.
△서로 배타적인 위치지만 조정에서 동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터지고만 게 ‘동학농민혁명’. 정치는 영원한 적이 없다. 박해 받은 천주교도의 편에서 보기에 ‘동학농민혁명’이 대리만족을 가져다준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기독교의 ‘천주(天主)’ 같은 관념이니 위기에서 서로 호감이 갔다.
△1905년 을미조약에 분노한 의병들이 일어나 ‘적을 막고 세상을 고치자.’는 일편단심 민들레 사상이 완주군민의 가슴팍에 숨어있었다. ▲억압 세력에 항거하고 ▲불의에 대들었으며 ▲옹졸하면 상대치 않는 강골(强骨)이 많았다.
△이 기회에 5000만인 현대사를 보자.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촛불집회에 선뜻 참여했던가. 이 만큼 어렵다. 구국이나 새로운 제도를 세우는 데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완주에서 남양홍씨 홍계희(洪啓禧)를 탐구해 볼 만하다. 홍계희 아들이 홍술해(洪述海) 봉동 구만리에서 살았다. 봉동은 전주부의 동쪽 만경강 유역 풍성한 지대이고 삼례는 아래 지역이다.
봉동·삼례는 개혁정신이 뚜렷한 고장. 박한영 스님, 문수 스님(4대강 반대 분신공양), 김춘배 의사, 이종호 해군총장, 윤건중 농림부장관, 일정시대 국내 애국지사의 출현…소작쟁의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 맘을 모르면 가장 서운하다. 주변 위인에게 경의를 표하자. 윗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너그러워야 한다. 내년 4월 총선거 누굴 선택할 것인가? ‘포근한 마음씨’부터 꼼꼼히 살펴보자. 어떤 호랑이를 탈까…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