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다음날 식구 넷이 서해안 곰소 아리랑식당에 들러 갈치 요리 2인분, 백반 두 사람 몫을 청하니 반찬만 스물일곱 가지. 밥은 어떤가? 27가지. 숟가락 채 못 될 것 같고… 아니나 다를까! 남은 반찬이 먹은 양보다 많음은 정상이 아니다.
△‘나온 음식 다 먹던지!’ △‘남을 바엔 먹을 양만 내 놓던지…!’ 이 말 하고 싶으나 ‘사내’라서 참았으나 하여간 고약한 폐습이었다.
▲TV방송 구호광고에 아프리카 애들 얘기 그침이 없고 ▲북한 식량 사정 널리 알려졌으며, 중동 ‘가자지구 전쟁 난민’은 물도 못 마시며 ▲한국 물가 오름과 실업자 급증에 돈 없어 혼인 않는 청년의 나라에서 반찬을 남겨 버리다니…복 달아날 짓이다.
정부나 남자들 힘으론 고치기 어렵다. ‘여인들이 일어서야’ 바로잡힌다. 장보기→요리→설거지까지 여자들 중노동이다. 버리는 음식이 바로 ‘돈’이므로 배고픈 사람 앞에 큰 ‘범죄’요, 하나님 ‘벌 받아 마땅한 짓’이다.
이런 일에 남정네가 이러쿵저러쿵하면 쪼잔해 보이니 여자들이 반찬 먹을 만큼만 차려내며 옹골찬 목소리로 ‘국민운동’을 펼쳐야 모양 좋게 바로 잡힌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려면 손 ‘여든여덟 번 간다 해서 쌀 미(米=八十八)’라 하지 않나.
“단양 아무개는 간장 종지에 빠진 파리를 쫓아 80리를 달려갔다.”, “화산면 궁뜰 박 아무개 씨 간장 그릇에 잠진 파리를 입에 넣고 빨아먹었다.” 이렇게 아끼고 일궈 지금 ‘아! 대…한민국’ 잘 사는 나라 아닌가.
70넘은 어머니 시대를 보라. △오이 하나 장독을 거쳐 나오면 장아찌로 변해 여러 식구 한 끼 반찬이 되고 △봉동 사람 생강 줄기 겨울 내내 얼렸다 ‘개약장아찌’ 만들면 1등 향토음식이었다. △게 한 마리에 끓인 간장 몇 번을 적시면 ‘게장’으로 여러 끼니 밥맛을 돋운다.
그런데 새 말 ‘음식물 쓰레기’ 이 소리 부끄럽다. 전엔 설거지한 ‘구정물’ 돼지가 먹었고, 쇠죽 끓이는데 들어가 가축이 곧 ‘식구’이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가 오셔도 ‘귀찮아(?) 그런지 외식’하는 나쁜 버릇이 보통이다.
며느리가 생선 만진 손을 씻어 국을 끓였는데 시아버님 수저를 놓았다. “우물에 씻어야 여러 날 먹지 한 번에 먹어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개는 서까래에 매달은 굴비를 바라보며 밥 한 술, 또 쳐다보고 밥 한 술 먹은 일이 있다. 하삼기 손ㅇㅇ는 논두렁 걸어 다닐 때 고무신 벗어 들고 다녔다.
세종시 영평사 된장·고추장 항아리를 보라. 정주영 왕 회장 생시에 밥상의 반찬이 세 가지였단다. 남자가 웬 잔소리냐 하지마라. 3일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고 했다.
식당 종사원의 귀여운 말 “남은 음식 싸드릴까요?” 지혜로운 사람이다. “버리느니 싸주시오” 즐겁게 받아들었다. 새 길을 찾아 나서자. 서러움 중 가장 안타까움이 배고픔이다. 세 끼 굶어 봤나? 하늘이 노랗더라. “당신 월급 몇 원인가요?”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