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며 외국인과도 다르다. 교회마다 명절 아침에 쓰라며 순서지(順序紙)를 주는데 이는 참고자료일 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가족의 평안과 자유를 위해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작은 걸 노리다 큰 것 잃음)’, ‘교각살우(矯角殺牛:뿔 고치려다 소죽임)!’ 혹 후회가 따를 수 있다. 초등학생 이하는 예배 잘 모르고 다만 ‘만남의 기쁨’만 가득하다.
그러므로 웃고 속삭이며, 움직이고 장난을 친다. 눈 비비는 놈, 화장실에 가는 녀석, 음식 먹는 어린이. 이런 모습 얼마나 귀엽고 자유스러운가.
명절은 여행과 달라 기다리며 또한 찾아든다. 고향(큰집) 이래서 좋다. 어른이나 중간층은 아이들의 행동과 몸짓에 따라 껄껄껄…웃어야만 진짜 만남의 보람이다. 20살만 넘으면 운전 똑바로 하고 ‘신언서판(身言書判)’에 익숙, 금방 어른이 되더라.
사위 늦게 일어나면 ‘밤에 뭣했기에 이제까지…!’ 이런 소리하지 말고, ‘애들 그렇게 가르쳐서 어찌 하나…!’ 한숨 쉬지 마라.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 좋아 마음대로 부스댐이 더 귀엽다. 건강해 그러하니 더 예뻐하고 박수 보내야 멋진 명절이다.
어른들 밥상 앞에 앉으면 가까운 것 맛있게 먹고 편안하게 일어서야 ‘매너 좋다’는 소리 듣는다. 차례상(제사상) 진설도(陳設圖) 외우고 있는 젊은이 몇이랴! 약간 서툴어도 그러려니 너그럽게 넘어가는 어른이어야 한다.
왼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 많고, 야구에서 왼손 투수가 더 주목 받는 세상이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어동육서(魚東肉西)’, ‘삼탕오채(三湯五菜)’ 좀 모르더라도 눈감아 주자.
제사상 잘 차리려는 충정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고인께서 생시 못 자셨던 추억이 떠올라 하나라도 더 올리려는 고마운 효심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전보다 형편이 좋아 생각들이 달라졌으니 진설보다 모임에 더 큰 의미를 두어라.
자손 없어 밥 못 떠놓을 집안 자꾸 늘어난다. ‘제사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 세상’에 들어섰다. 식구끼리의 실수 코미디로 보고 기다리면 고쳐지더라. 사회생활 잘하면 큰 재목 성공이다. 의식 하나 잘 앎이 인격 전부는 아니다.
나이 들수록 소박하고, 너그러워야한다. ‘지는 게 이기는 것’ 이 마음가짐을 지녀라. 손자 노래 잘하면 용돈 더 주고, 애 낳으면 자랑하며 춤춰야 한다. 좋은 인사 태도는 ‘즉석복권’처럼 금방 기쁨이 되더라.
아들 나가며 “다녀오겠습니다.”하면 “잘 다녀 와” 얼른 답례하라. 입 크게 벌려 활짝 웃는 가족에게 특별 대접을 해야 한다. 식구 북적거릴 때가 그 집안 전성기이다.
전에 손님 오면 닭 잡는 ‘인심 좋은 집안’이 많았다. 되로 주고 말도 받는다. 경주 최 부잣집 밥상이 ‘경상도 문화재’로서 대우를 받더라. 이 나라 양자 받아올 자손도 양자 줄 아들도 없다. 족보 집집마다 무후(無後) 출계(出系) 소리만이 늘어나는 고비에 들어섰다. 열 명 모이는 명절에 아이 몇이던가. 산에 고총(古冢)만 자꾸 늘어난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