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혹 노무현 대통령이었더라면?”, “안호영 국회의원이라면?” 이런 가상 한번 해보시지요.
“1791년 10월 29일 진산군 고향을 떠나, 1791년 11월 13일 오후 3시 사람 왕래 많은 전주 남문 밖 싸전다리 시장에서 몸을 나무토막 위에 누이고 ‘망난이가 머리를 단번에 잘랐습니다.’” 그 때 윤지충 33살, 권상연 41세 보름 만이었습니다. 첫 순교자 윤지충(1759-1791)·권상연(1751-1791)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이 그때라면 신부·목사·장로·권사 목이 열두 개라도 모자라지요. 이유는 단 하나 ‘천주(天主)를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문서로 아는 건 『천주실의(天主實義)』 ‘십계(十戒)’와 ‘칠극(七克)’정도.
취조자의 핵심 질문은 △“부모·임금·하느님’ 중 누구를 공경하느냐?”이었고 △“왜 신주를 불태웠느냐?” ‘이단사설(異端邪說)’-‘사적(邪賊)’이라 묶어버렸습니다. 지충과 상연은 내외종(內外從)간입니다.
▲1791년 10월 29일 첫닭이 울 때 진산을 나섰으며→지금 경천면 신거렁(신거렁이:신거령-新居嶺)에서 처음 쉬며 조반을 마쳤고→용진읍 개바위에서 두 번째 쉬며 말에게 먹이를 먹였습니다.→해질녘 안덕원을 지나→조그마한 산등성이를 넘자→감영에서 나온 나졸들이 남문 밖 중군아문(中軍衙門)으로 끌고 갔을 때는 캄캄하고 밤이 이슥했습니다.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무덤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윤지충·권상연·윤지헌 3인 복자의 유해는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169-17번지’ 초남이 ‘성지교회당’에 모셔졌습니다.
▲윤지충(윤지헌)의 이종형 유항검(1756-1801) 마을입니다. 정화사업 중 윤지충 묘를 알아내어 2021년 9월 1일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의 교령이 선포되어 잘한 성사(聖事)이지요. 무덤하면 잔디 덮인 높다란 흙더미를 생각하는데 교회당 안이니 벌초 걱정 없으며 산속 묘와 달리 아주 정결합니다.
▲대만 타이베이 장개석(蔣介石:장제스) 시신 안치소를 참관했고, TV에서 북한 평양의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 모습도 보았지요(김일성·김정일 시신 안치). 조선에 천주교가 소개된 지 7년 후인 1791년 조정 대신 중에 ‘벽파(辟派)’·‘시파(時派)’가 있었고 시파에 의하여 천주교가 들어오자 벽파가 들고 일어나 싸잡아 천주교도를 박해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여!’…자유롭게 부르짖고 찬송가 우렁차며, 신학대학교에서 매년 5,000인 목사를 내는 세상입니다. 유항검 묘는 치명자산(승암산) 꼭대기에 있고, 전동성당은 윤지충이 참형 당한 자리랍니다. 차 있는 목사마다 둘러보시지요.
초남이는 유범수 전 국회의원의 동네이고 유범수 씨 마당이 바로 유항검의 성지입니다. 혁신도시에서 뻥하게 길을 내면 좋겠습니다. 유항검의 아들과 며느리가 ‘동정부부’ 완주는 이처럼 깨끗하여 ‘찬물도 씻어 먹는 고장’입니다. 성지입니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