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갑은 전주 오목대에서 잔치를 베풀어 조선 건국의 마중물이 됐다. 전주최씨 문성공 최아(崔阿) 시조의 4남은 용생(龍生)-용각(龍角)-용갑(龍甲)-용봉(龍鳳) 중 셋째가 최용갑. 고려에서 장원급제를 한 최고 머리로 아버지와 함께 대정략가(大政略家)이다. 최용갑 부인은 우주황씨(紆州黃氏)로 이 여인 역시 대단하다. 전주이씨 이백유(양후공)가 최·황의 외손자이다. 최용갑은 앞날을 위해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이몽(李蒙:이백유 부)을 사위로, 이질 심효생(沈孝生)을 전주유씨 유습(柳濕:시조) 사위로, 보성오씨 오몽을(吳夢乙)을 조카사위로 삼았으며, 처 이질 이보(李保:아버지 전주이씨 자을)는 사위 몽(蒙) 여형제와 혼인하였다. 1380년 왜구가 남원 운봉에 쳐들어오자 고려 이성계 장군이 내려와 이들을 무찔러 ‘황산대첩(荒山大捷)’을 이뤘다. 이기고 돌아올 때 최용갑은 오목대(梧木臺) 잔치를 열어 병사들을 실컷 먹였고, 이성계를 환대 대풍가(大豊歌)를 부르며 춤추게 하였다. 이성계는 이 대접 잊을 수가 없었고, 든든한 인재 최용갑을 호남의 만리장성으로 꼭 찍어 여기서 조선 개국의 꿈을 다졌다. 개성에 돌아온 이성계는 8년(1388년) 뒤 요동반도를 치라는 명에 따라 나섰으나 ▲국내문제 ▲국제문제 ▲개인의 야심을 놓고 생각하니 ‘이게 아니다’라는 결단 아래 위화도에서 회군, 개경에 돌아오자마자 최영 장군을 먼저 제거했다. ①중국과 마찰할 필요성이 없고 ②왕건과 달리 호남(최용갑)과 충청도(정도전) 기반이 튼튼하며 ③고려는 국운이 다했다. 선조 이의방과는 달라 한걸음 더 내디뎌 회군 5년만인 1392년 7월 17일 수창궁에서 왕관을 썼다. 전주출신 오몽을(1등공신)-이백유(3등)-심효생(3등)-황거중(원종공신)을 키워 조선을 열은 최고 전략가가 바로 몽(蒙)의 장인 최용갑이다. 제헌절이 왜 7월 17일인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7월 17일과 같게 함이었다.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 협동조합장도 편히 당선되려면 ▲전략이 필요하고 ▲참모가 튼튼해야하며 ▲선생(?)이 꼭 도와야한다. 고산 지역에서 임귀현 전 완주군의원 4표가 모자라 졌는데(6표 차로), 20호 큰 마을에서 살았더라면 단선됐을 것이다. 받은 ‘아이디어’ 잘 다듬어 보검을 만들어야한다. 대아저수지 댐공사 때 어느 명사가 종이에 ‘⌒’를 그려주었다. 즉 ‘직선(-)이 아니고, 보(洑:댐) 곡선(⌒)으로 쌓아라’는 뜻이었다. 전주교육장 조경득은 선거 때 찾아간 교육위원이 만나주질 않자 그의 대문 앞에서 개를 건드려 화나게 하고 돌아와 “개에 물려 병원에 입원했다”고 소문을 퍼뜨리니 ‘찾아 올 수 밖에∼’ 결국 뜻대로 당선됐다. 대아저수지 최용각 묘가 산 농림부를 이겼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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