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과 24일, 이틀 동안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악극 ‘홍도야 우지마라’가 무대에 올려졌다.
알려졌다시피 ‘홍도야 우지마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소재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연극의 대명사다.
두 차례의 공연에서 주인공인 홍도보다 더 주목을 받은 여배우가 있었다.
바로 기생 ‘수련’역을 맡은 김유정(58)씨로, 이순(耳順)을 앞둔 적지 않은 나이에 제2기 완주군민 배우로 당당히 이번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을 마친 뒤, “전에 혹시 배우를 하지 않았느냐?”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출연 배우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반면 배역은 자신의 나이보다 서른 살 이상 어린 기생 역을 맡았고, 더욱이 연극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민배우 김유정씨를 봉동의 모 카페에서 만났다.
■연극, 처음 마주하다
주부로 살림을 하고, 할머니로 손주를 돌보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김유정씨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인 정상식 (사)한극연극협회 완주지부장이었다. “6월에 공연예정인 ‘홍도야 우지마라’에 배우로 참여해 보라”는 전화였다.
마침 (사)한극연극협회가 제2기 완주군민 배우를 모집하고 있었던 터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흔쾌히 수락하고, 구, 삼례중학교를 찾아갔다. 맨 처음, 제작·출연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생 ‘수련’이란 배역도 맡아 2개월 간 준비했다.
이후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하고,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는 거의 매일 배우들과 만나 호흡을 맞췄다.
■연극과 친해지다
사실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단다.
“완주군민 배우 중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았고, 대사 암기도 쉽지 않아 자신감도 떨어졌고, ‘어떻게 해야 되나?’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뿐만 아니다. 어려운 안무까지 하려다보니 체력적으로도 많은 부담을 느꼈다. 그러면서 ‘괜히 연극을 시작했나?’라는 후회도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을 180도 바꿨다.
먼저, 공연 연습하면서 틈틈이 체력단련을 했다. 또한 거의 매일 집과 가까운 천변을 걷고, 공터 운동기구를 헬스장 삼아 열심히 체력을 키웠다.
아울러 운전을 하면서 춤 동작과 연결, 대사 암기를 하는 등 일상과 공연을 분리하지 않고, 늘 마시는 공기처럼 함께 호흡했다.
이렇듯 매일 운동하다보니 체력이 크게 향상돼 대사 외우는 것이나 안무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욕심도 점점 커졌단다.
“체력이 뒷받침 되니 자신감도 생기고,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되더라고요. 주인공은 홍도지만 내가 주인공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연극 체질이다
공연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과 불안 대신 설렘이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았다.
대사와 안무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나를 기억하게 할까?’고민하며, 머리핀 등 소품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직접 준비했다.
6월 18일, 드디어 무대에 올라 첫 공연을 가족들과 지인, 관객들 앞에서 선보였다.
“무대 올라갈 때 떨리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 즐기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생은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이기 때문에 즐겁게 놀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공연을 마친 뒤, 안무와 연출을 맡은 관계자가 그에게 다가와 “기생 수련에게 자꾸 시선이 가고, (수련이)관중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연기에 대한 평가를 해줬다.
그가 가장 듣고 싶었던 최고의 찬사였다. 특히 그가 “2절부터 안무하면서 노래하는 것이 힘 들었다”고 얘기하자, 안무를 지도한 선생은 “그렇게 안보였다. 즐겁게 하더라. 걱정하지 마라”며 칭찬과 격려를 해줬다.
공연을 본 남편 역시 “다른 사람들 가만히 있는데 혼자 술 먹은 것처럼 했다. 딱 기생하면 좋겠다”라며 농담반 칭찬반으로 연기에 대한 평을 시원하게 내놓았다.
특히 그는 이날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7~8살 돼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다가와서 “너무 예쁘시고, 춤도 잘 추세요”라고 말했던 것. 아이의 엄마도 “춤을 예쁘게 추셨다”며“덕분에 즐겁게 공연을 봤다”고 칭찬을 곁들여 감동을 받았단다.
이렇듯 1차 공연은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그렇게 인생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뒤, 6일 후 2차 공연을 했다.
연기에 더욱 자신감이 붙은 그는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기생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며 두 번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녀들은 “이 길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며 응원했고,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엄지척 했다. 또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팬이라며 화분을 보내줬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줬다.
이날 그는 인생 최고의 날을 보냈다며 자랑했다.
■연극에게 길을 묻다
이번 공연이 끝이 아니다. 오는 10월 쯤, ‘홍도야 우지마라’ 앵콜 공연이 예정돼 있다. 아무래도 관객들의 호응 덕분에 무대에 다시 올릴 모양이다. 연출자로부터 참여 여부를 묻는 전화가 왔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단다.
‘홍도야 우지마라’ 외에 최근 절찬리에 막을 내린 ‘고물은 없다’라는 제목의 연극에도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행복한 고민’이지만, 두 연극 모두 절친인 정상식 완주연극협회장이 주관하고 있어 거절은 없다. 시기만 조절해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배우뿐만 아니라 완주연극협회 사무 전반은 물론 차기 작품부터 기획, 홍보 등의 일도 맡아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무료했던 나날을 보내다 연극을 하게 되면서 즐거움을 찾았고요. 연극을 통해 나도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고,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특히 연극을 하면서 20대, 30대, 40대의 젊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고, 공유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생각도 젊어지고, 삶의 에너지도 충전되고 있다는 군민배우 김유정씨.
그에게 앞으로 계획, 꿈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배우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지역을 성장하게 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도전할 겁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