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가든다면 신혼여행 어디로 갈까?’ 하와이, 괌, 일본, 동남아, 유럽, 처갓집… 쉬운 일 아니다. 자기 혼자 정하기 어렵고 상대방(아내)의 생각을 잘 살펴야 한다. 난 1960년 1월 5일 4박5일 신혼여행을 떠났다. 수산국(水山國)이다. 이도 인연이다. 나는 물(水) ‘팔자(八字)’ 수산국 신혼여행지로는 안성맞춤이다. 아내도 이의 없고 식구들도 당연시했다. 그 당시 자동차가 귀해 나들이가 어렵던 시절이었다(휴전되고 8년). 신혼부부는 10리를 걸어 버스 타고 나가 또 50리. 기차로 환승, 목적지에서 내리니 어둑어둑하다. 10리를 또 걸어 등불 밝은 집에 들어섰다. ‘야! 신랑 신부 왔다’며 기다리던 사람마다 여기저기서 내다본다. 안내하는 방에 들어섰으나 절에 간 색시처럼 누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겠다. 신혼여행 수산국 입국자는 ‘이ㅅㅊ이다.’ 시키는 대로 절하고 나니 곧 밥상이 들어왔다. 실은 조반 조금 먹고 나온 처지라 가장 반가운 시간이다. 우리 집에서 먹기 어려운 청정 강바닥에서 건져 올린 갈게(아주 작은 게) 이빨 좋은 때라 맛있게 먹고 나니, 어디서 왁자지껄 청년들이 들이닥쳐 나를 업고 달려간다. 곧 이어 “이 죄인! 왜 이 나라 공주 어여쁜 처녀를 니가 훔쳐 갔느냐? 네 죄 네가 알렸다.”며 발바닥을 친다. 이ㅅㅊ 재행(再行)길 이야기이다. 수산국은 처가 마을(수산:水山)을 가리킨다. ▲이튿날은 한재 넘어 웅포(熊浦) 짚가리·나무가리가 큰 처외가에 갔다. 낯이야 설지만 새신랑이라고 닭을 잡아 좋은 술에 큰 대접 근방 해가 서산이었다. ▲소한 지나 짧은 낮 석양 수산국에 돌아오니 신랑 기다리는 사람 여럿이었고, 밤이 깊어지자 건넛방이 두 사람만의 잠자리. ▲제3일째다. 찹쌀엿으로 유명한 함열 용산과 한틀 처이모·처형 집에 갔다. 이집에서도 닭장에서 꽥 소리가 났다. 저녁밥을 먹고 걸어오다 진밭 동네 지날 무렵 새댁을 꼭 껴안으니 조용하다. ▲4일째다. 수산국 마을 처족 큰집 작은집에서 부른 신부신랑 밥상은 다리가 휠 정도로 푸짐하다. 태어나서 최고 대접이다. 9시경 돌아오니 종일 수고했다며 두 사람만의 입방(入房)을 재촉한다. 1월 긴긴밤 긴 줄을 모르고 눈을 뜨니 날이 샜다. ▲4박이 끝나 집에 오는 날. 어른들 대접하라며 술병에 떡 동고리를 챙겨주었다. 처 할머니·장모·처남에게 인사하고 돌아와 어언 그 세월 63년. ▲아들·딸 나며 사는 동안 이제 고로(古老)에 든다. 전남 강진군에서 애 낳으면 5천만 원을 준다나! 전설의 고향 같은 소리이다. 문틈으로 바람 솔솔 파고드는 방에서 출산시켰고, 솥에 물 데워 간난 애 목욕시키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제 처 허리 굽고 무릎·발이 시리단다. 회갑 넘은 아들과 처 보기 미안해 할 말이 없다. 쌀밥에 고깃국을 주는 아들·아내 고마워 웃음이 절로 나온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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