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배 부인의 이름 ‘전명숙(全明淑)’·‘김명숙(金明淑)’ 중 ‘전명숙’이 옳다. 김명숙은 독립운동가 아내로 변성명이거나 언론인들이 틀린 오자(전→김)로 봐야한다. 부부 살다보면 서로 닮아진다고 한다. 전에 ‘부창부수(夫唱婦隨)’, ‘삼종지도(三從之道)’, ‘여필종부(女必從夫)’를 미덕으로 삼았던 시대가 있었다. 남편 김춘배는 독립운동을 격하게 하다 8년 감옥살이를 했으니, 일본을 보는 감정 좋을 리가 없어 적개심을 품고 살았다. 김춘배 부인 전명숙은 뉘 앞에서나 뒤질 여인 아니고 당하면 당할수록 증오심이 머릿속 가득 차올랐다. 남편이 의사(義士)라면 그 부인 역시 대단한 ‘의사’로 봐야 온당한 평가이다. 경찰관서에 잡혀가기 다반사요,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이게 병이 되고 화가 됐다. 젊을지라도 이 엄청난 고초를 이겨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산후조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영양실조에 근심걱정, 삶에 대한 무력감, 비운 또 언제 밀어닥칠지 모르는 불안감, 시부모의 노쇠, 주변에서 보는 곱지 않은 눈초리 등등으로 몸 안의 피가 제대로 돌지 못했으며, 잠이 오질 않아 신경이 날카로워져 우울증에 덧쌓였다. 애기 젖이 모자라고 엎친 데 덮치기로 날씨마저 고르지 못하다. 감기가 폐렴 되었고, 산후 풍에 돈이 없어 가미보허탕(加味補虛湯), 해동피탕(海桐皮湯), 두림주(豆淋酒), 혈풍탕(血風湯), 자탕(紫湯) 한 첩 제대로 쓰지를 못하였으니 견뎌낼 수 있겠나. 1935년 10월 15일 아가는 젖을 달라고 엄마 가슴팍을 파고들어 빨아대나 나오는 게 없자 갓난아기 김함순(金咸順)은 까무러치게 울어댄다. 이게 엄마 마지막 눈을 감는 임종 앞에서의 애절한 울음소리이었다. 3일 치상! 구름이 낮게 깔린 날 상여에 실린 전명숙은 다리 저는 박 집사가 든 달랑 명정(銘旌) 한 장, 상여 뒤엔 아홉 살 종수…얼기설기 짠 삼베 상복, 머리에 짚과 삼을 섞어 꼰 돼리…이날따라 하늘이 내려앉은 먹구름…명정도 상여 천포도 나부끼질 못한다. “어허! 어허! 어허이, 간다 간다 종수 엄마는 간다.… 어허! 어허! 어허이 무기징역 남편 못 본 채 전명숙은 간다~” 상여가 영마루를 넘을 때까지 늙은 시어머니·시아버지 마을 사람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가 됐다. 가냘픈 장송곡 ‘해보다 더 밝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뒤를 잇지 못하고~)’ 훌쩍 훌쩍 콧물을 닦으며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 리’ 찬송가 마디마디가 만민의 애간장을 끊었다. 장차 종수와 그 동생 함순은 어찌 되었나? 삼례출신 독립군 김춘배의 아내 이야기이다. 7월 8일이 김춘배 옥사한 날로 잊을 수가 없어 이 글 여기에 올린다. 아는 분들마다 손자 김경근(010-4651-6732)에게 전화 한 통 걸어 보면 어떨까. 보훈청이 보훈부로 됐단다. 좀 달라지려나….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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