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답답하고 폭폭 하실 때 많지요. 이럴 적엔 ‘큰 숨 한 번 푹 내쉬고 생각하면’ 지혜가 떠오릅니다.
‘욕 튀어 나오려는 순간’이나 ‘주먹 올라가려 할 때’, ‘책상 탁 치고 싶을 적’ 시험 삼아 해보세요. 시끄러워질 일 90%로 이깁니다. ‘참아 잘했구나!’ 금방 자기를 칭찬하게 됩니다. 젊어서 안 된다고요? 그래서 이 말을 젊은이들에게 해 둡니다.
민주주의 시대라지만 전화로 ‘여기 경찰서요’, ‘세무서요’, ‘검찰청이요’하면 누구나 그 첫마디에 긴장(緊張)합니다. 이런 현실은 옛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기관들은 ‘법’과 ‘죄’를 다루기에 죄 없어도 섬뜩해집니다.
▲경찰을 한자로→‘警察’이라 쓰는데 이 글자를 ‘파자(破字)’하면→敬+言+宀+祭입니다. 이 풀이는 ‘제사하는 집 공경이란 말’입니다. 법당이나 신전을 가리키지요. 아주 고상한 말입니다.
여기서 공경하는 말이란 ‘기도(祈禱)나 서원(誓願)’입니다. 경찰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바라며 비는 성소를 가리킵니다. 경찰공무원이나 국민 모두는 언어 인식부터 새로 시작하여 ‘무서운 곳’이 아니라 경건(敬虔)한 처소로 여기는 새로운 안상을 열어갑시다.
▲코로나19로 3년을 지나며 “학교 없어도 ‘교육’이 된다.” 이런 말이 나왔답니다. 교원들 정신 나게 하는 말입니다. 교육(敎育)을 파자하면→孝+攵+云+月이니 ‘달이 차고 기울 듯 효를 채찍질 하라’입니다.
효는 백행지본. 학교에서 효를 지도하는데 학부모 아들 귀하다고 너무 민감하며, 애 위한답시고 수학여행까지 따라가 함께 잔다니 학교에서 무슨 효 교육을 시키겠습니까?
지금 춘추전국시대를 닮아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아닙니다. 한강을 두고 남북이 시끄러우며, 완충지대로 갈려 남북한 70년 넘게 고운 말 한마디가 없습니다. 조국의 비극이지요.
110년 전 외국 선교사와 전도대가 지나가는데 주막집 여주인이 마침 구정물을 버려 선교사가 뒤집어썼습니다. 화 난 선교사가 숨을 크게 쉬고는 “두해 해도 해도 너무해!”하니 일행 중 하나가 “방금 ‘두해’가 무슨 말이요?”하고 물으니, “조선 사람이 조선말을 모릅니까? 두 해는 ‘이년’ 아닙니까?” 이래서 서로 웃고 떠났답니다.
시골 정치인은 험한 말이 적고 오히려 수도에서 나오는 말이 지독하게 험합니다. 황사로 눈이 침침, 한 때 코로나 무서워 마스크 쓰고 숨쉬기는 답답, 물가는 올라 입이 마르는데, 서울 정가의 험담·악담·야한 말로 귀가 멍멍합니다. 이목구비(耳目口鼻) 이 꼴을 보며 욕이 나오려 합니다.
‘지도층 인사 여러분! 숨 한 번 크게 쉬고 깊이 생각하여 말 삼가 합시다.’ 몸 안의 호르몬이 해마다 줄어듭니다. 줄면 어떠냐고요? 여자는 소리가 커지고 남자는 잔소리가 심해진답니다. 이러니 시끄러워지지요. 시끄러움이 실언→정쟁→분열…원수로 바꿔짐을 생각해야 합니다. 몸에 이로운 숨쉬기를 배웁시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