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오월 꾀꼬리 소리에 마음 흔들린다. 서울로 갈까! 누굴 만날까! 이런 심사인데 오후면 풍금소리 창밖으로 새어나온다. ‘고향의 봄’, ‘섬마을 선생’, ‘홍도야 우지마라’, ‘이별의 부산 정거장’, ‘목포에 눈물’…‘노들강변’, ‘연안부두’, ‘불효자는 웁니다.’, ‘여자의 일생’, ‘봄날은 간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들녘 일 나선 농부 발걸음을 묶었고, 남새밭에 나온 처녀 가슴팍을 후벼 판다. 건반 위로 넘나드는 손가락 만져보고 싶고, 산속 걸어들어 고사리 꺾을 생각, 단 둘이 산사 가고픈 마음, 보름달 높아질수록 은은한 풍금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오빠’라 부르고 싶으나 감히 입이 아니 열린다. 큰 마을에 전주성심여중학생 단 하나뿐. 나머진 집안에서 일하는 낭자들이다. 1968년 분교(分校)근무 발령이 나 출근하니 교실 지을 땅도 없이 본교에 한 반(57인)을 편성해 놓은 상태. 곁방살이나 다름이 없어 교사는 “나 하나 고생하면 57인 편안한데…!” 번쩍이는 이 생각을 안고 비를 맞으며 처음 방문 학부모와 이래저래 ‘마을회관’ 얘기를 하니 ‘시골사정 이렇게도 모르나’는 눈치이다. 6·25전쟁 중 불에 탄 마을로 창고 있을 리 없다. 게딱지만한 건물이 보이기에 ‘이 곳이면 됐다.’ 선언하고, 본교 교장에게 책상 30개를 부탁, 3월 중순 단독 분교장을 여니 시오리를 걸어 다니는 1학년생마다 무척 기뻐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 보내면 놀데가 없으니 ‘창고 교실’로 모여든다. 천둥산 남쪽 마을 얘기이다. 지게 지고 땔감 해 나르다 심심하면 풍금을 친다. 이럴수록 나 홀로 근무 주의해야겠기에 술·담배 당장 끊으며 매사에 신중했다. 마침 청와대에서 선물(책)이 왔고, 도지사가 개량쟁기를 주어 마을 공용으로 쓰게 했다. 이 소문에 면장·지서장이 놀랐다. 어느 학부형 나무를 베다 산림공무원 눈에 띄어 도끼·톱을 빼앗긴 채 끌려가기에 “나 좀 봐요! 나나 당신 배웠기에 공무원. 그러나 우리 아버지 삼촌 나무꾼 아니었소. 나 객지라서 몇 달 후면 나갑니다. 그러면 여기 사람은 멀어지나, 우린 다시 만나 친구 될 수도 있으니, 인정 좀 받게 이 분 봐 주지요.” 숨을 크게 내쉬더니만 없던 일로 해주고 천등산 그림자를 밟으며 내려갔다. 이튿날 ‘해결사’란 말이 동네에 퍼졌다. 박종환 서울 고모가 내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에게 ‘덕수국민학교 교사’ 얘기를 한다. 여름방학 내내 교실신축공사 감독을 했다. 10월 완공된 너른 교실에서 외할아버지와 엄마 생각에 내가 날 달래려고 풍금을 친다. 공무원 종이 한 장이면 가는 몸. 2월 28일 정기이동 때 눈물 글썽이던 사람들을 뒤에 두고 떠나온 한 해의 고백이다. 풍금소리에 맘 울렁거렸던 여인마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손○정 보고 싶다. 서로 부끄러울 게 없으니 한번 만났으면 하나 아서라…두견새 소리로 대신하자. 55년 전 일이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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