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부던 바람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지겠다/ 아이는 비를 들어 쓸으려 하는구나./ 낙화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오(선우협?)’ 옛 어르신들 ‘낙화’도 소중히 여겼습니다. 호남은 낭산·여산에서 제주도 서귀포까지. 여길 전라도·호남이라 하는데,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가 전주향교요, 마당에 선 은행나무 무척 대접받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심은 장암(場岩) 은행나무는 어떤가요? ‘약자는 이런 모습.’ 익산시 왕궁면에 있습니다. 그럼 누가 심었나요. 정당문학(政堂文學) 황거중(黃居中)입니다. 이 어른 억불숭유주의 문신이었습니다. 각 지방에 학교 세워 교수(훈도)를 보냈지요.
유교를 상징하는 나무가 은행나무! 이래서 성균관·향교 마당에 행자목(杏子木:은행) 많습니다. 이때 본인 마을에도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조선시대 여러 사화-임진·정유재란-정묘·병자호란…시끄러운 세상 부지하기 어려워 떠난 우주황씨 땅에 진천송씨(송영구)→전의이씨(이봉승)가 뒤이어 사는 동안 이 은행나무 죽지 못해 살며 늘 약자에 들었습니다.
대무뿌리가 침노하고 꾸지뽕가지가 기어올랐습니다. 이러니 옆구리가 상하고 영양실조…누가 거두리오. 사람 도리로나 자연법칙으로 이래선 아니 되겠기에 젊은 기업인 황양규(黃亮奎)가 은행나무와 바닥 땅을 사들였습니다. 이게 ‘창조’와 ‘청직이’정신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7일 동안 만물을 만드셨고 특히 동식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사람 수 늘며 약육강식이 판을 칩니다. 하늘의 질서가 무너지며 약자는 구박→몰락→소멸 단계까지 왔습니다. 하늘이 노할 일입니다.
가령 장암 은행나무 향교마당에 섰더라면 문화재·기념물 반열에 올랐을 터이나 장암(바위산) 대밭 숲속에서 600년을 버텨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보세요. 은행나무 1,000년을 살고, 3,000년까지 산답니다.’ 지금부터 산자의 몫입니다. 대 뿌리에 시달리고 꾸지뽕 가시에 할퀴며 살아온 600! 이 나무 죽이냐 살리느냐 외국 기름때며 자동차 굴리는 사람들 생각과 맘에 달렸습니다.
‘사람 줄어 선거구 소멸단계라 은행나무 뵈지 않습니다.’ 이러면 더 할 말 없지요. 그러나 우리 국민 땅굴 꺼져 갇힌 광부 기어이 살려냅니다. 우물쭈물하다 세월호에서(304인)·이태원에서(156인)에서 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전주시 삼천동 장씨 땅에 ‘곰솔’ 있습니다. 어떤 악인이 죽이려 농약(?)처리를 했지요. 점차로 죽어갑니다. 이에 놀란 당국에서 수목분야 전문인을 불러들여 살려냈습니다. 시민마다 기적이라며 환호했고, 나무 소생 장수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사람은 ‘죽이는 맘과 살리는 손’이 있습니다. 장암 은행나무 의인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시청에서 기념물지정을 하면 울창해 집니다. 원불교 총본산이 있고 옛 이리농림학교가 있던 익산시에서 나서야 합니다. 망성 신작리 ‘곰솔’ 왜 죽었나요? 전주 교동(校洞) 은행나무는 팔팔… 왕궁(王宮) 은행나무는 시들시들…! 그러면 아니 되지요.
임진 이치전투에서 순사한 황박 의병장 마을의 은행나무입니다. 함양 은행나무를 한번 둘러보고 결심하세요.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오직 신앙심으로 살아온 이남규(李南圭)
-----------------------------------------------------------------------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다.” △찬송 450장 1절 이 가사처럼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진문-이진만-이현정 3남매를 엎고 앞세우고 △부현교회→동상교회→소양교회→운주교회→강진교회→삼례동부교회→봉개 화평교회→군산 모교회→군산 성신교회 걸어서 취임하고 걸어서 나왔습니다.△시골 교회 복무 중 가는 곳마다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중수했습니다. △더운 여름 7월 7일 자기 가진 것 모두와 몸을 바쳐 성신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땅을 사고 군산 미군 비행장 폐자재를 사다가 반 목수 본인 손으로 예배당을 세웠지요.
이것으로 완성이 아닙니다. △신도 모심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아나 사진 속에서 웃을 뿐 말이 없네요. △나오던 신자 결석 하면, 혹 더러 떠나면 무릎 끓고 십자가 앞에서 불을 끈 채 통성 기도했습니다.
△서기 1970년 삼례제일교회 목사 사례비가 한 달에 16,000원! 이 시절 여기보다 규모 적은 시골 교회에서 식구 배고픈 때 많았습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시멘트 멘 손으로 주무르고, 벽돌 목재 업어 날났습니다.
△익산 화평교회 시절 서울특별시 초대 김형민 시장 내외분 내려와 함께 주일 예배드리는 날은 경사로 여겼습니다. △이남규, 그 부인 김원자와 이웃하고 살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덕담을 들었습니다. △신앙 앞에는 선후배가 없어 ‘군산노회장’을 했고, ‘총회 재판국’ 임무도 맡았습니다.
△2008년 11월 30일 원로목사 추대 예식으로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음향시설, 예배자리, 식당, 표어, 기도실, 사무실, 종대 마련과 관리에 신도들 눈치 봐야 했고 돈을 쪼개 쓰던 교회 살림을 회고하며, 집에 돌아 왔습니다.
△정축생 1937년 완주군 화산면 와룡리 804번지 태생 아버지는 이흑동 어머니는 김복녀 사이 단 형제 아우입니다. △어려서 나간 모 교회는 화산면 종리교회입니다. △지게지고 터를 다듬어 예배당을 세울 때 일요 헌금 몇 십원이 없어 울었습니다. △6·25 전쟁 잘 비껴 목숨은 부지했으나 먹을 게 없어 동상면 산내 장작 쪼개려 형제 들어가 일해 놓은 것 밤비에 떠내려갔고, 운명이려니 하며 조반 전 장작을 쪼개다 도끼날이 발가락을 찍었습니다.
△군대 생활 3년간 수송부대원 강원도 근무 배경 없어 고된 일 많이 했습니다. △봉상교회 오기영 목사 주례로 김원자와 혼인 이진문·이진만 어렵게 기르다 맨주먹으로 미국 떠나보내고 무릎이 닳도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기도로 산 내외간인데 2023년 5월 8일 이남규 원로 목사 형제가족 8인 모임 점심시간이 마지막 오찬이었습니다.
▲꿈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뿐일세. △이게 본인 이야기인가요, 만인에게 하는 말인가요. 물어보니 사진 속 이남규는 웃고만 있네요. △얼굴이라도 마주하자는 은퇴 목사 모임 주선 이야기는 그냥 넘어 갑니다.
/ 2023. 5. 15 이승철 割半之痛(할반지통:몸 반으로 쪼개는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