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옆 구석진 곳에서 신발 고치는 아저씨의 진지한 말에 땡땡땡…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서둘러 A반 수업 가사실 문을 여니 학생마다 국수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젓가락을 막 잡는 참이었다. 담임 H교사 “이 선생님 자리예요.” 내 몫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H께 고맙다하니 걸걸한 목소리로 “인사 받을 분은 저 아주머니와 그리고…”이러지 않나. 다가가 “아주머님 고맙습니다.” 이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실내 분위기 워낙 좋아 인사 한 마디 “고맙습니다. 나이 들면 시야 넓어야 하고 널리 보이면 ‘보답’·‘지원’해야 하는데 도움만 받아 미안합니다.” 마치며 앉으니 손뼉을 치고, 저만치의 K선생은 얼굴을 좀 가린 채 더욱 힘차게 박수한다. 20분 쯤 식사를 마치고 좀 어색해 “신입구출이라지만 저 ‘신입선출(新入先出)’한다며 출입문 앞에 이르러 뒤를 돌아다보니 K교사 일어서있지 않나! 퇴근길에 H교사의 말 “오늘 선생님 국수는 K선생님이 차렸어요.”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럭저럭 한해를 지나 타교로 전근, 곧 결혼을 했다. 50년 세월이 흘러 KTX 기차에 오르니 곧 익산역. 옆 자리에 품위 있는 여인이 앉는다. 금방 강경→서대전을 지날 무렵 “혹 이 선생님 아니세요?”, “어떻게 저를요…?” 곧 알아차렸다. “…얼마만입니까. 그해 스승의 날 실고추-김가루-깨소금-참기름-달걀고명 국수와 김치 맛 잊지 못합니다.” 감사 인사를 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 마디만 확인해 주세요.”, “선생님 절 좋아하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속 있는 말씀 왜 안하셨습니까? 저도 많이 늙었군요.” 솔직한 대답 피할 수 없다. “K선생님! 전 7형제 맏아들로…4촌·재종 많은 가난한 집안, 염치가 있지 이런 처지에 감히 본심을 털어놓겠습니까? 모두 K선생님을 위해서였지요.” 이 말에 K는 “제 팔자군요. 저 8남매 맏며느리로 들어갔습니다.” 알 것 다 알았다. 그때 마침 기차가 터널을 지난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 50년에 25년을 더하니 75살 늙어빠졌다. 목적지 등 물을 일이 아니다. 우린 종착역 지하도에서 600달 만의 또 작별이다. 기차를 보거나 거리에서 70대 여인을 스치면 ‘내 팔자이었군요.’ 자꾸 이 말이 내입으로 외워진다. ‘팔자?’ 이 소리에 나 소극적이었던 태도에 나 내가 미워 보인다. 그러나 “아! 잘한 게다. ‘나 비록 숙맥 소극적이었지만 남 신세를 생각하여 제대로 살았구나!’ 자위하는데 마침 5월이다. 이가 부실 국수를 먹을 때마다 50년 전 그 국수만 못하다. 나 3남 2녀지만 차마 상대방 자녀수는 묻지 못했다. 지난날의 국수와 K교사, 두 살 위의 넉넉했던 H여선생 그 시절 어린 학생들 생각이 난다. H선생의 포근한 마음 “스승의 날에 스승이 ‘제자 대접해야 스승이지요.’ 그래서 국수를 차렸습니다. K와 이 선생님 함께 만날 자리를 마련하기 겸…” 나중에 안 일이지만 H교사도 ‘내 앞에서 자기 맘(사랑)을 감추고 살았다’는 것이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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