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거라곤 ‘붉은 피’·‘맨 주먹’일 뿐. 완주에서 살 수 없으니 만주에 갔고, 1945년 일본 항복하자 그 내외 환향을 했다. 전주 역에서 내렸으나 고향엔 땅 한 뙈기 집도 뜰도 발 들여놓을 곳이 없었고, 전주부(府) 역시 마찬가지라 오목대 근처 셋방에 짐을 풀었다. 돈 있어야 시장에서 장사라도 하는데 밑천 대줄 사람이 없는 나이 31살(1914. 4. 26. 생/처 25살). 막노동판도 적은 때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원을 봤기에 조직력(組織力)이 강했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 사람 사귀는 데는 귀재(鬼才)였다. 한 번 안 사람 절대 놓치지 않는 철학을 지녔다. △전주(김용희…) △삼례(황두현, 이병교…) △봉동(이원구, 이희준, 이동준, 윤상익, 오인봉, 안석태, 이인석, 이문구…) △고산(이재규, 손일동, 김재옥, 이상준, 구성조, 박권재, 고향준…) △화산(이효성, 김순태, 김한수, 장인민, 임헌준임재교, 김재화, 임선규…) △비봉(유윤상, 신용석, 국순남…) △운주(박기준, 윤석동, 최병준…) △동상(유일동, 배충직…용진·초포 생략)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노는 자리라곤 오직 다방. 만나면 얼굴 보고 헤어지는 게 직업이다. 1948년 최초 총선거 ‘표가 사람’, ‘사람이 표’의 시대가 열렸다. 1950년 2대 총선도 조직 표를 가진 사람이 대접을 받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가 다가오자 ‘이번엔 이존화 당신이 나서야 합니다.’ 이게 여론이었다. 개표 결과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2대 국회의원인 박정근 현역을 이겼다. △서울에 올라가 집이 없으니 사직동 셋방살이를 하다→삼천동 국회관사에서 살았다. 관사에는 지방민이 여인숙처럼 찾아든다. 이승만 박사·이기붕은 그 조직력에 감탄 자유당 조직부장(組織部長)을 시켰고, 재선(4대) 후 국회 문교분과위원장을 했다. ‘이존화 하는 일도, 못하는 일도 없다!’ 이런 세평을 들었다. 말 함부로 아니 하기에 ‘부탁 받은 일 해놓고도 입 열지 않아 나온’말이다. 2023년 완주군의회 건재(健齋) 서남용 의장의 신년사 ‘세이공청(洗耳恭聽)’ 이 말이 마음에 든다. 언어선택에 일가견이 있다. 중앙의 여당·야당의 말씨가 사나울수록 서남용 의장 사자성어가 돋보인다. 지난 번 명함에는 ‘귀를 열고…’이었는데 이젠 ‘귀를 씻고…’이다. 잘 한 일이다. ‘귀 열고 들어보니 들어선 아니 될 말 많다.’ 이를 탓할 게 아니라 ‘못 들은 척 귀를 씻자’는 발상 대단한 탁견이다. 이게 수양과 경륜의 결과이다. 공자가 “여보! 오다보니 금덩이가 있습디다. 주워가시오” 농부 하는 말 “당신 줍기 싫은 걸 나 더러…” 못들을 말 들었다며 물로 귀를 씻었다. 마침 한 농부가 소 물 먹이러 나왔다가 ‘귀 씻은 물’ 소 먹일 수 없다며 상류로 올라갔다. 완주 10만 군민은 이런 이야기라도 하며 웃고 살자. 선출직 남은 임기 3년 사람 맘 붙들고 놓치지 마라. 한승헌 변호사 추모식에 500인이 모였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4: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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