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 없다.’ 이 속담 맞습니다. 부자 망하는 데 그 원인 어찌 하나 둘 뿐이리오! 고산에 1,200석 갑부 고갑준이 있었고 이 부자 당시의 사회 통념을 지키려다 하루아침에 망했습니다.
고갑준의 본처 소생이 없었습니다. ‘고정식은 소실 출산 서자’이었지요. 이래서 양자(고경식)를 들이자 입장이 곤란해진 고정식은 “아버지! 저 상해에 가 독립운동하고 싶습니다. 돈이나 좀 주세요.”. “어! 그래라.”이랬으면 됐을 걸 거절당했습니다.
서울에 간 고정식이 수은여관에서 독립운동가 자금책 김진성을 만났고, 두 사람은 속 있는 얘기를 하다가 고정식이 “우리 집에 돈 많습니다.” 이리하여 고정식이 김진성과 함께 고산에 와 “이게 우리 집입니다. 난 여기 대문 앞에서 망을 볼 터이니 안에 들어가 아버지께 말씀하시오”
김진성은 육혈포를 내밀어 9,600원을 챙겨갔습니다. 그런데 서울 가 송금 과정에서 종로경찰서원에게 붙잡혀 김진성은 징역 10년, 고정식은 3년형을 받았고, 고정식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1923년 26세로 아들도 없이(겨우 딸 하나) 옥사했습니다.
이러자 집안의 고 아무개가 자기 아들을 재빨리 고정식 호적에 ‘입양자’로 올렸지요. 문제는 여기서 망조가 들었습니다. 고정식의 호적상 입양아들 ‘상속 몫을 내놓아라.’ 이것입니다. 재판 결과 일본인 법정은 원고 손을 들어줘 하루아침에 700석이 날아가 재산 반 토막이 금방 날아갔습니다.
가정이지만 진즉 상해로 보냈더라면 1945년 독립운동 애국지사로 당당하게 들어와 정부수립에 참여하여 완주 정치판을 크게 키웠을 위인입니다.
2023년이 ‘고정식 옥사 100년’인데 자손 없고, 오직 군민뿐인데 어디서 ‘옥사 100년 기념식(추념)’을 열어주려는지요? 완주군애향본부·바르게살기운동 완주군협의회 아무리 바빠도 추모회를 성대하게 펼쳐 업적을 쌓을 정체성을 세워보지요.
고정식 의사 묘는 고산면 서봉이 공동묘지에 있답니다. 우선 인터넷에서 을 찾아보면 마음 달라질 것입니다.
2010년 봉동 출신 문수 스님은 4대강 반대에 나섰다가 분신공양(焚身供養)을 했습니다. 만경강가에 동상을 세워 문수 스님 알리고 완주에 큰 인물이었음을 자랑하며 사표로 삼아야 만경강 물이 맘 놓고 흐릅니다.
만경강을 띄우고 싶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부터 내세워야’ 합니다. 솔직히 만경강은 ‘직강(直江)공사’로 볼거리가 아주 적은 곳에 듭니다. 만경강 발원지 탐사도 중요하지만 강 주변 인심과 인식을 바로 잡으려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작년 연말 이웃돕기 성금 500석(1억원)을 낸 향토기업에 ‘天·地·人이 보답하기 바랍니다.’ 은행 망하는 걸 보셨지요. 망(亡)자 조심해야 합시다. 자기도 알리고 남도 알아야 합니다. 공직에 당선된 자들 벌써 1년이 가고 3년 남았네요. 말 가다듬어 손을 내밉시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