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 제대로 해야 한다. 사람 아무리 화나도 ‘밥상 차 엎으면 아니 되고’, ‘노적가리 불 지르면 큰 죄이며’, ‘농사철에 보(洑) 트기는 함께 죽자는 행위이다.’
논밭의 작물 갈아엎음을 종종 보는데 농민의 도리가 아니며, 하늘에 거역 ‘농자천하지대본’에 먹칠하는 행패이다. 농사지어 값이 싸면 이는 정치·시장경제 탓이지 곡식·채소 그 자체가 당할 일이 아니다.
논밭을 갈아엎기 전 ‘나 이러저러하니 누구나 공짜로 가져가라. 뽑아가라’ 차라리 이래두면 ‘씨앗 값’ 몇 천 원씩이라도 놓고 갈게다.
농촌마다 논밭 어떻게 일궜나 그 근원부터 알아보자. 완주 만경강 강가 석전·와리 들판에 풀이 덥수룩한 큰 흙(돌)무더기가 있고 이를 , , 라 하는데, 돌멩이의 방언이 ‘독새기’이다. 논밭 개간 단계에서 나온 돌이나 흙무더기를 가리킨다.
전주 혁신도시의 귀물이 틀못(기지제)이고, 인구 3만 도시 가운데의 못은 보기 드문 보배로서 주변을 거닐기 좋도록 잘도 꾸며놓았다. 시가지는 새 집이며 주민이 젊고 전화·전기 줄은 보이지 않도록 묻어버렸다. 이런 도시 가운데의 연못이니 자연보호 삶의 공간으로 전북 제일이다.
둑의 길이 400m 그 아래 논밭 가운데에는 위에서 말한 ‘뚝생이’가 많다. 저수지가 되고 땅을 골라 논밭을 만들 적에 돌·흙이 골칫거리였다.
지게 바작에 퍼 담아 이를 저다 버렸는데 흙 더미가 높아질수록 힘이 들어 허리는 뻐근하고 어깨는 아프며, 다리가 휘청거려 숨이 차 견디기 어려웠으나 목구멍이 포도청 살기 위해 이 일을 해냈다. 소출이 나오자 봉제사 접빈객 아들 딸 길러 여우며 개간의 보람을 느끼던 농심(農心)의 산물이다.
농민운동을 하되 진짜 농심의 원천을 바르게 알고 화를 자제하라. 공부 못한다며 ‘책 태우거나’, 용돈 적다고 ‘돈 찢으며’, 가난한 집에서 ‘아내 패는 버릇’, 애 운다고 ‘입 틀어막으면’ 뒤끝이 좋지 않더라.
ㅎ는 혼인하고 얼마 후 시집 이모님이 오시자 농 속 자기 옷을 꺼내어 몸에 맞도록 다듬어 입혀드렸다(j 어머니). ㅇ는 장에 갔다가 차비 50원을 옆집 아주머니 손에 쥐어주고 정작 자기는 10리를 걸어 왔다(k 아버지).
임병교는 남의 묘 사초하고 벌초까지 해줬다. 김춘회는 고급 차에 친구 태워 바닷가 여행을 시켰다. 대전 이진응 내외는 코로나19 시절 더운 여름 전주 늙은 재당숙을 뵈러왔다. 임정남 선생은 막차 놓친 친구 처가에서 재워 출근시켰다. 이게 사람의 훈훈한 덕행이다.
농작물에 화풀이 하는 농민은 정상이 아니다. 스님은 걸으며 혹 개미 밟을까 조심을 하지 않나? 나쁜 성깔머리 고쳐 부드럽게 해야 한다. 너무 강하면 부러지더라. 운주 피묵에서 이서 앵곡까지 고운 인심이 넘쳐나는 완주가 아닌가? ‘완(完:으뜸이 되는 집)’은 궁궐(宮闕)이란 뜻. 기대를 걸어볼만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옹고집으로 망할 수도 있다.
/ 유하당(柳河堂) = 완주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