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연재 언제까지일지 나도 신문사도 모른다. 더러 만나는 사람마다 어렵거나 모르는 걸 자주 묻는다. 2022년 10월 우석대학교 객원교수(김상희)가 ‘한말 완주의병’을 묻기에 유희태 완주군수(1문9의사 후손)를 소개하니 ‘유 군수가 이승철 만나라’ 하더란다. 이래서 서로 함께 껄껄껄 웃었다. 의병 잘 아는 사람이 적다. △의병은 젊은 분들로 자손이 귀하고 △최후 승리자가 아니며 △기록 등 자료가 없거나 엉성하다. 이래서 교수-식자-후손도 모른다. 여기에 세월마저 오래 흘렀다. 그런데 마침 의병 자금조달에 관한 ‘우리고장 얘기’를 김주용(원광대학교 교수) 글 6면에서 봤다. “…1906년 4월 삼례면 신금리·석전리에 ‘이토농장(伊藤農場)’이 설립됐고, 1907-08년 익산·삼례지역에서 의병활동이 계속되자 종종 일본인들 피해도 있었다. 1907년 11월 이토농장이 의병공격을 받아 농장원 1인이 죽었고, 창고가 불에 타자 춘포면 대장촌에 임시사무소를 잠시 뒀다. 이토농장은 이런 위기 속에서도 만경강 유역 수리시설에 관심을 둬(대아저수지 1920년대, 경천저수지 1930년대 막음) 봉동-삼례 땅을 몽땅 쓸어안아 1916년 이토농장 삼례사무소가 관리한 토지면적만 336정보(1,008,000평)에 이르렀다.” 일본인 이처럼 지독한 놈들이다. 화산 유지명 의병대장은 사음(舍音)을 설득 병사들의 양식을 확보했다. 당시 부자일지라도 의병 지원 펴놓고 할 수 없으니 ‘빼앗겼다.’고 했으며, 일본 헌병은 ‘강도’로 몰아 씌워 엄벌에 처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완주군은 만고에 빛날 일(황박 의병장 추모비 세움)을 소리 소문 없이 잘 해냈다. ▲우주황씨 황양규가 제의했고 ▲황병주(이치·웅치전투기념사업회 대표)와 ▲박성일 군수가 결심을 해 황박 의병장 임란 이치싸움에서 전사한지 430년 만에 추모비가 섰다. 황박 얘기야 인터넷 글 속에 더러 있지만 누가 열심히 읽겠나? 나라 위해 큰 공을 세웠더라도 세월가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황박은 아버지 시묘 살이 중 난리가 나자 의병을 이끌고 싸워 이겼다. 웅치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나 이치전투에서 죽었다. 잊을 수 없는 소리 ‘정령 하나라도 죽이고 죽을지언정(寧可殺一賊而死), 살아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리(不可退一步而生)’. 정담 동료의 말을 실천했다. 그때 어머님 50대, 처 20대, 아들 둘은 열 살 미만… 더운 여름 누가 시신을 거두랴! 고혼으로 430년 허공을 떠도는데, ‘2022년 9월 19일 유희태’ 새 군수가 돌을 제막해 외로운 넋을 모셨다. ‘이렇게만 해주면 나도 나라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참석자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사람 알아주는 세상을 함께 이어나가자. 완주는 사람 알아주는 멋있는 군(郡)이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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