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돌아다니는 ‘버릇’과 남 말 들어주는 ‘참을성’에 고개 끄덕이는 미덕(?)이 좀 있다. 정준(丁俊) 할멈의 얘기. 김제 사는 아들이 “어머니! 제집에 오셔서 며칠 쉬시면 형수·형까지 편해요. 꼭 오세요.” 옳은 말이다. 이것저것 싸들고 가 하룻밤을 자는데 아침에 보니 아들이 없다. 며느리의 말 “장사 바빠 새벽 4시에 나갔어요.” 종일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아들 오기를 기다리니 밤 10시경에 들어와 씻고 곧 누어버린다. 정준 어른은 날이 새자마자 서둘러 본 집에 돌아왔다. 이러고 나서 5년이 지난 서기 2022년 8월 초 김제 작은아들 집 가게에 나가보니 장날인데도 휑하고 가게 찾아드는 손님 하나 없다. 이를 본 정준은 “이것들 뭣 먹고 사나! 빚은 없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새자 전처럼 첫차로 집에 돌아와 밭을 보니 이것저것 먹을 게 넘쳐나며 집안 여기저기 식량·잡곡이 듬뿍 쌓여있다. 밥상 앞에 앉은 어머니는 김제 아들이 걸려 수저가 무겁다. 눈치 빠른 며느리가 “어머님! 작은아들 걱정 때문에 그러시지요?” 정준은 대답을 못하고 수저질만 하자 큰 아들이 “어머님! 걱정 노세요. 며느리가 쌀·채소·감자·잡곡·기름·김치·장 택배로 보냈습니다.” 정준은 며느리 손을 꼭 잡으며 “아가야! 넌 어떻게 내 맘을 그리도 쏙 잘 아느냐?”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아들아! 며늘아가야! 난 등대고 자는 이 집이 최고다. 모두 니들 덕이다.” 세상 어머님은 다 이렇다. 80 넘은 남자들은 어떤가? ‘밥 세끼 먹고 아들 딸 조용히 살면 천행인줄 알아야한다. 명함 뒤쪽에 빼곡히 박은 경력·이력 부질없다. 장차관에 고위직 공무원 영관급 군인도 늙으면 매미 허물과 같다. 노래 ‘봉선화(봉숭아)’2절 마지막 ‘낙하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깨우침을 주는 구절이다. 해 뜨면 쌀밥 주고, 해지면 저녁 주며, 밤에 이불 덮어 주는 사람 있으면 최고 영광이다. 거추장스러운 것 다 내려놓고 ‘균형-공평-순응’에 익숙하면 바르게 늙는 것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2022년 정유회사 돈 뭉떵 벌어도 주유소는 별 재미를 못 본다. 요사이 박사 논문 표절 문제로 박사들 얼굴이 깎인다. 학위 없는 흙 수저들 기죽지 마라. 농사 잘 지으면 우리끼리 ‘농사박사’라 부르지 않나? 얼마나 멋진가. 정준 노파 입장에서 큰 아들과 며느리가 ‘효자 중 왕 박사’로 보인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삼례 석전 주민은 돌과 싸워 이겼고, 와리·하리 사람은 만경강 물을 굴복시켰다. 이 험지 사는 석은 이병교(石隱 李丙敎)선생 문집을 남겼고, 와리에 양봉전문인이 많다. 요즈음 1시간 이상 얘기 할 수 있는 사람 여럿이면 최고 부자요, 서로 웃으면 큰 잔치이다. 기름 값 비싸 삭신 아파도 오그리고 자는 노인이 걱정이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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