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7일 많은 눈이 내렸다. 우체통에 연하장! 이 시대의 별꼴이라며 살펴보니 ‘jj’ 단 두 글자뿐.
뒤를 보니 예쁜 손 글씨로 ‘꽃은 벌·나비의 것이지 찬바람 스치면 아니 되지요!’, ‘1960년대 초의 선생님 말씀이었는데 눈 내리고 벌·나비·꽃 아니 보이나 겨울바람만 볼을 스쳐, 이 바람이 선생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jj가.
가슴에 불이 확 붙는다. “1970년대 초 시내 N중학교에서의 여름 어느 학생을 슬쩍 건드렸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줍어 웃고 있나 했는데 우는 게 아닌가. 놀라 물으니 ‘귀 아파요’ 일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겁이 나 얼른 꼭 껴안고, 난 이제 너 가르칠 자격이 없어 선생 그만 둬야겠다. 난 니 엄마·아빠와 함께 근무를 했고, 순한 너 공부 잘하며 예뻐 아들 같은 생각이었는데 ‘귀를 아프게 하다니 난 떠나야한다.”, “선생님 그게 아녀요. 저도 선생님을 아빠처럼 생각해요.”
1960년 초 3월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어여쁜 여선생이 왔다. 난 2년 전 발령 났고, 작년에 장가든 유부남이다. 여교사가 적던 시골학교 시절에 귀엽고 품성 좋아 학교의 꽃이었다. 나와 동 학년을 맡아 이웃 교실이다. 초임학교 내가 먼저 떠났고, 그러나 가끔 편지를 하면 답장이 꼭 왔다. 100통은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jj는 어느 교원과 혼인해 그 날부터 위 ‘연하장’말로 편지를 끊었다. 솔직한 말이지만 손 한 번 잡은 적 없으며, 밥 한 끼 함께 하지 않았고, 동동크림 하나 선사한 일이 없다. 영화관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jj와 난 아들 대학교 합격자 발표 날(당시 합격자 이름 벽에 붙임) 만났다. jj 아들이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첫 손을 잡고 축하한 게 마지막이었다.
2021년 내 몸무게 45kg! 의사마다 병은 없다는데 이 지경이다. 갈 나이다. 각오를 했다. 어느 날 의사 pp가 찾아와 어머님이 보내셨다며 주사를 놓았다. 다섯 번은 될 것이다. 살아났다. 사람 맘 이상하다. 좋은 일을 당하면 의사와 jj가 무척 고마우나, 속이 상하면 ‘날 살려 놓았다’며, 의사 그 엄마도 원망스럽다.
이야기는 앞으로 돌아간다. 생활기록부를 꾸미는데 학부모 이름이 낯설지 않다. 사진을 보니 눈에 익은 얼굴 ‘혹 jj 교사? 그 아들?’ 큰 눈을 비비며 또 봤다. 다음 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측대로이다. 이 학생만 보면 기분이 좋다.
편지 100여 통을 주고 받았지만 오라버니처럼 생각했지 이성으로 여기질 않았다. pp 앞에 부끄러울 게 없어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pp 아버지께 죄송스러운 일 없다.
기러기 떼가 하늘을 가르며 전할 말 없느냐고 묻는다. 답장은 이 글로 대신한다. 동지섣달 긴긴밤 보고 싶지만 이렇게 또 접는다. ‘보고 싶네요. jj!. 팔자걸음 발자국 위에 눈이 쌓여 지워지네요.’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