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1일 북한 군부는 평안남도 순천 일대에서 ‘미상의 발사체 2발’을 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는데 불쾌한 뉴스이다.
발사체는 전쟁에 쓰는 무기이고, 전쟁나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 6·25 전쟁을 상기하며, 멀리는 임진왜란을 생각해 보자. 전쟁만은 꼭 피해야 하고 절대 일어나선 아니 된다. 혹독한 왜놈들은 우리의 귀와 코까지 베어갔다. 참혹한 전쟁 중 가장 비참한 사람은 전사자와 그 부모·형제·부인·가족들이다.
임란 당시 우주황씨 문중 ‘전주최씨 부인’을 소개한다. 아들 이름은 황박(黃璞:1564. 10. 15∼1592. 8. 28). △이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賊所害 同年八月二十八日)
△황박은 누군가? 전주 우북면 장암(紆北面 場巖:현 왕궁면 장암)출신이다. △1582년 무과에 합격한 군인으로 전주 만호(萬戶:정4품)를 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아버지 ‘섭(燮)’이 돌아가시고 상중(喪中)일 때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군인은 특히 이런 경우 가장 난감하다. 28세 황박은 의병 200인을 모아 전장에 나섰다. △바로 웅치(熊峙)·이현(梨峴) 싸움이다.
△더운 여름 다섯 용장(勇將)들과 함께 싸우다 이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어머니 전주최씨는 아들이 상복(喪服) 입은 채 나가 싸우다 죽었으니 그 슬픔 경천지동(驚天地動) 천지가 문어짐 그 이상이었다. 황박 장군이 전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주변 여건이 있었다.
▲뒤에 대사간(大司諫:정3품)을 한 최철견(崔鐵堅)이 외할아버지인데, 이 어른은 임란(壬亂) 당시에 전주도사(全州都事:종5품)였다.
▲이 국난 직전에 본인이 전주만호를 했고, 외조부가 현직 ‘전주도사’인데, 어찌 아버지 상을 핑계 삼아 사묘(侍墓)만 고집할 수 있겠나! “효(孝)가 바로 충(忠), 충이 곧 효입니다.” 어머님께 이 말을 남기고 나섰다. 어린 아들 수억(秀億)·수백(秀百)을 안아 보고, 부인 전의이씨(승효 딸)는 감히 무슨 말이 나오질 않았다.
▲3대 독자가 죽은 소식은 9월에야 처음 들었다. 북받치는 슬픔과 한이 병이 되어 결국 죽었다.
▲당시 전라관찰사 김광혁(金光赫)이 즉시 중앙에 알리니 1593년 선조대왕께서 조의 말씀과 함께 먹을 걸 내리셨다(癸巳賜食物:계서사식물).
그러나 지금은 민주국가 국권이 회복돼 애국선열을 위하면서도 음지·양지가 뚜렷하다. 챙겨주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오불관(吾不關) 충도 효도 헤아리지 않으며, 솟구치는 열정이 모자라게 보여 이게 걱정이다.
전쟁나면 못쓰고, 노사갈등도 불편하며, 빈부격차 못 볼 일이다. 잘못하면 일본·북한 포탄이 남한 하늘을 넘나들 수도 있다. 당하는 사람만 억울하다. 마음 편한 세상을 바란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