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경로당 토방에 여인 신발 세 켤레가 나란히... 천하 얘기꾼 A가 기침을 크게 하고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망구(望九:81살) 세 부녀자 재미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내용인즉 젊어서 남편들의 로맨스! 들을수록 재미난다.
▲첫 번째 바람 할머니. 남편 사귀는 여인을 만나자마자 대뜸 “니가 감히 내 남편을 탐내. ‘당장 물러나라’” 이렇게 큰 소리를 쳐 몰아냈단다.
▲두 번째 구름 할머니는 여인을 만나 낮은 목소리로 “예쁘고 착해 보이는데 어쩌다 이리됐소. 내가 살아있으니 애들마다 나를 ‘어머니’라 부르겠지만, 당신은 평생 ‘작은어머니’야. 그 소리 후회 될 것이니 잘 생각해 보아. 그 좋은 성품 환한 얼굴 새 사람 만나 펴놓고 잘 살아요. 내 말 끝났어.”
이랬더니 그 여인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라며 “언제 어디서 만나든지 ‘형님’ 이 소리를 받아 달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에 가엾어 고개를 끄덕이자 일어나 절하고 나갔다. “그 후 시장이나 차 안에서 만나는 경우 ‘성님!’ 이렇게 반긴다.”며 그 마음을 곱게 여긴다.
▲세 번째 안개 할머니는 “친구가 귀띔을 해주더군요. 3일 밤을 생각했습니다. 결심을 크게 하고 당사자를 만나보니 인물-살결-키-표정…나무랄 데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이어하는 얘기 “나 두 사람 사이 알고 왔으니 무슨 말을 할지 짐작 가지요?”라고 물으니 “‘예’라고 대답합디다.”
“그러면 나하는 말대로 따르렵니까?”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한숨을 크게 쉬고 조용한 자세로 눈치를 살피다 맘을 가다듬어 “이게 운명이라면 함께 삽시다.” 이 여인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어르신 나 놓아 주세요. 죽을죄를 졌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기에 손을 잡고 “지금부터 잘 들어요! 첫째, 니 남편-내 남편 이런 생각 하지 말 것. 둘째, 니 아들-내 아들 이런 차별 하지 않을 것. 셋째, 세 사람 무덤 나란히 쓰게 할 것. 내 말 끝났소.” 이렇게 결단하고서 오늘에 이르렀단다.
이야기꾼 A는 ‘아들 모두 몇 이냐’고 묻자 △자기가 낳은 맏아들은 교원, 둘째는 공무원, 셋째는 의사 △동서가 낳은 첫째는 기업인, 둘째는 변호사 다복하고 손자가 열다섯이란다.
A씨는 시계를 보며 “함께 살자는 결심을 왜 했냐.”고 되물으니 쉽게 대답을 한다. “자기 친정 안동김씨는 번족한데, 시집 와보니 3대 독자 자손 귀한 집안이라 ‘덕스러운 여인’을 놓기 싫더라.”고 한다.
경로당마다 허리 굽은 노인들이 이 나라 문화의 주인공이요, 살아온 이야기가 세계에 전할 문화유산이다. B 노파가 죽어 요 밑을 보니 4천만 원짜리 저금통장이 있었다. 안 먹고…안 입고…안 쓰고… 이게 한국 여인들이다.
‘개 저리 밀치고 한국여성 정신!’을 알아주자. 모녀 사망. 전기요금 고지서가 쌓여있더란다. 돈 없고 자손 적으면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인생은 낙엽과 같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