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소방관-경찰관-군인 ‘계급’을 외워두고 그 수고 알아줘야 한다.
△교도관:①교정이시관 ②교정부이사관 ③교정감 ④교정관 ⑤교감 ⑥교위 ⑦교사 ⑧교도.
△소방관:①소방총감 ②소방정감 ③소방감 ④소방준감 ⑤소방정 ⑥소방령 ⑦소방경 ⑧소방위 ⑨소방장 ⑩소방교 ⑪소방사 ⑫소방사보.
△경찰관:①치안총감 ②치안정감 ③치안감 ④경무관 ⑤총경 ⑥경정 ⑦경감 ⑧경위 ⑨경사 ⑩경장 ⑪순경 ⑫의경.
△군인:①원수 ②대장 ③중장 ④소장 ⑤준장 ⑥대령 ⑦중령 ⑧소령 ⑨대위 ⑩중위 ⑪소위 ⑫준위 ⑬원사 ⑭상사 ⑮중사 ⑯하사 ⑰병장 ⑱상등병 ⑲일등병 ⑳이등병.
모두 제복을 입은 사람이나, 교도관과 소방관은 수효까지 적어 가족 외엔 계급장을 잘 모른다. 민간인이 교도관 잘 안다면 전문 연구가가 아닌 이상 이상한(?) 일일 수 있다. 장기근속 30년이면 오직 죄수(罪囚)와 살았다는 말이다.
소방관은 불을 끌 때의 ‘소방복(消防服)’ 차림 이외 정장모습을 보기가 어려워 계급이나 계급장을 잘 모른다.
그러나 군인은 군대생활을 했거나 가족 중에 많고 TV 화면에도 자주 나와 군대계급을 모른다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화산출신 유○○·노○○ 장군, 용진에 육ㅇㅇ 장군이 있었고, 삼례에서 전주해성고교 출신 이종호 현 해군대장이 나왔다. 고산 서봉과(최ㅇㅇ·엄ㅇㅇ) 오산에 구영을(具永乙) 대령이 있었다. 구영을 준장 되면 마을잔치 때 할 축사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서장에는 구이 이상선 변호사와 화산의 박ㅇㅇ 경무관이 있다. 큰일을 하기에 고향 들릴 기회가 적고 또한 고향에 와도 접촉할 틈이 없어 미담소개가 어렵다.
1950년대 말 초등학교 은사 구연식 선생님이 대위로 부평 공병대(?)에 근무 중일 때 구영서와 함께 찾아가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고산 삼기 손병돈 원사는 사단장한테 받은 찻잔 한 쌍을 가져왔고, 고산 읍내 유형수 원사는 교재용 투구를 준비해 주었다. 6·25전쟁 혼란기 고시오 화산지서 순경이 술과 점심을 사줘 그 때나 지금이나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아는 소방관과 교도관은 적다. 교도관 노고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이존한은 수감자에게 깊은 감동을 준 화가이다. 종리 이동ㅇ는 양귀비 문제로 들어갔다가 이존한을 만나 오랫동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살았다.
1946년 11월 11일 ‘전주형무소 탈옥사건’이 있었다. 사형언도를 받은 자, 무기수, 폭력배, 사상범 등등 다루기 힘든 대상이 많다. ‘교도(矯導)’라지만 바로 잡기 어렵다.
이병우 소방관은 근무교대를 마치고 나와 어머니·아버지 병간호를 아주 잘한 효자다.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줘 고맙다. 월급봉투 하나에 목숨 걸고 산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괘심한 사람이 많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