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두러니 마을’이라고 불리는 화산면 원우마을. 이 마을은 70세 이상 어르신 1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젊은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원우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있다. 바로 완주 와일드푸드&로컬푸드축제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감자삼굿’과 ‘청국장’덕분이다. 감자삼굿은 문홍섭(70)씨가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청국장은 손연호(69)씨가 집념과 고집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실 두 사람은 부부이다. 부산의 한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생 한 번 없이 곱게 자란 손연호씨가 전라도 완주 사람 문홍섭씨를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서 잘 살다가 2008년 어느 날, 화산면 원우마을 외딴집으로 이사 왔다. 귀농 후 낯선 시골마을에 살면서 외로움에 눈물콧물 흘리며 고생했던 손 씨가 남편과 함께 공동체사업을 추진하면서 원우마을은 활력이 넘쳐났고,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등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마을로 변모했다. 지금은 양상추를 비롯 브로콜리, 비트 등 친환경 농산물을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하고, 염소를 기르며 부농의 꿈도 나름 이뤄냈다. 특히 평등부부상을 받은 후 활짝 웃으며 나란히 찍은 기념사진이 방 한가운데 턱 하니 자리 잡을 만큼 금술 좋은 부부로 소문나 있다. 성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늦가을 종착역으로 접어든 어느 주말 오후, 작은 평상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손 씨의 귀농 일기를 펼쳐봤다. ■서울에서 완주로 귀농 손연호씨의 고향은 부산시 해운대이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손 씨는 어머니가 한의원을 운영할 정도로 부잣집 딸로 귀하게 자랐다. 남편 문홍섭씨는 25살 되던 해에 둘째 언니 소개로 만나 성실한 모습에 마음이 끌려 이듬해 결혼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재활용센터를 운영했다. 제법 돈도 많이 벌어 아파트도 장만하고, 편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커지고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술자리와 스트레스도 많아져 남편의 건강은 나빠졌다. 결국 살기 위해 귀농을 결정했고, 남편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화산면 원우마을로 지난 2008년에 이사왔다. “남편 건강이 안 좋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허허 벌판에 빈집 사서 급하게 이사 왔어요.” 막상 내려왔지만 서울에서 부족함 없이 편하게 살다가 낯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막막했죠. 사람들도 낯설고, 동네사람들이 ‘웬 젊은 여자가 시골로 이사 왔나?’라는 의심의 눈빛으로 저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원우마을 주민으로 인정받아 이처럼 시골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니 하루에 수백 번씩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손 씨의 말이 이해가 갔다. 아니 실제로 시골로 내려와 3년간은 외롭고 힘들 때마다 가끔씩 서울에 올라가 바람을 쐬곤 했단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그 당시 제가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노력해보자 마음먹고, 내가부터 주민들에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 주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 주더라고요.” 이후 마을 이장이나 주민들이 씨앗을 챙겨주고, 볏짚도 구해주는 등 농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하나, 둘씩 알려주면서 점점 농사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맨 처음 동네 사람들은 곱게 차려 입고 화장을 한 손 씨의 모습을 바라보면 ‘1년도 못살고 떠날 거다’, ‘두 달도 못 버티고 갈 것이다’며 서로 내기를 걸었다는 후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되레 신뢰를 듬뿍 주면서 남편 문 씨에게 이장직을, 손 씨에게는 부녀회장직을 각각 맡겼다. ■손연호표 청국장 대박나다 주민들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 마을사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완주군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마을 공동체사업(참살기마을)이다. 당당히 공모에 선정돼 청국장과 콩나물 등의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청국장을 마을 사업으로 결정 한데는 손 씨의 역할이 컸다. “이장님에게 ‘마을 특산품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갈밭이고, 자갈논이라 물 빠짐이 좋아 쌀은 안 되고, 대신 콩을 심어 연무대 장날이나 고산장날에 판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손 씨는 이장에게 “콩을 가공해서 팔자”고 제안했지만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아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손 씨는 직접 농사지은 콩을 들고 강원도에 사는 청국장 명인을 찾아가 수십 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발효기술 등을 배워 마을 사업과 접목했다. 그러니 원우마을 청국장은 곧 ‘손연호 표(表)청국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으로 특허를 내고, ‘솔잎청국장’이라는 브랜드를 입혀 시장에 내놓으니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렸다. ■남편의 히트상품 ‘감자삼굿’ 그 무렵, 원우마을은 감자삼굿 체험장을 지었다. ‘감자삼굿’은 삼굿이라고 불리는 땅 구덩이 안에 불을 지펴 돌을 뜨겁게 달군 뒤 그 위에 감자, 고구마, 계란, 밤 등을 올려놓고, 쑥이나 대나무 잎으로 덮은 다음 물을 부어 그 증기로 익혀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옛 조상들이 즐겨먹던 향수 음식을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전수해 바른 먹거리를 체험하도록 하는 게 감자삼굿 체험장을 지은 목적이다. 사실 감자삼굿은 임정엽 군수 재임 시절 ‘옛날 먹거리 개발’을 읍면에 과제로 던져줬던 데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손씨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감자 서리해서 몰래 구워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감자삼굿’을 화산면에 제안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돼 지금은 축제에 빠져서는 안 될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축제 때마다 감자삼굿 체험부스는 시연을 직접 보고, 음식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4월 체험장 준공 당시, 전북 도내는 물론 전국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원우마을을 찾아 감자삼굿을 앞 다퉈 취재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부지런함 ‘성공의 열쇠’ 손 씨는 농사일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농사짓는 땅만 5천 평이나 되기 때문이다. 7년 전부터 하우스 2동과 노지 300평에 양상추를 심었다. 부추와 브로콜리, 비트도 재배해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한다. 혁신점 매니저는 “농산물을 건강하게 잘 키웠다”며 “농약 잔류 검사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염소도 키운다. 15년 전에 손씨의 오빠가 “넓은 초지에다 염소를 키워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안에 흔쾌히 두 마리를 선물 받았다. 워낙 부지런한데다 농사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편 덕분에 염소 2마리는 350여 마리로 늘어났고, 돈도 많이 벌었다. 좀 더 욕심을 내 염소식당을 개업해 대박이 났지만 염소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돼 1년 6개월 만에 접었다. ■소박한 꿈 ‘열심히 사는 것’ 귀농한 뒤, 처음 농사일을 접하면서 지네에 물려도 보고, 허리를 다쳐 119에 실려가 한 달 만에 퇴원하는 등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7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갈 정도로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하지만 마을과 지역을 위해서라면 열일을 제쳐 놓고 팔을 걷어 부친다. 특히 힘들어도 농사에 욕심을 내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고 싶어서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풍족히 대접하고,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지저분한 빈 땅을 예쁜 꽃밭으로 만들었다. 모두 남편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우마을로 이사와 남편과 함께 화산두레풍장이라는 농악단에 들어가 함께 활동을 하고, 실버가요제에도 참가해 장려상과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부부 평등상을 받아 주위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공로패와 감사패도 받았다. 이 부부가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왔음을 인터뷰 내내 느꼈다.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으로 건넨 질문에 손씨의 대답은 짧았고, 화려한 수식어는 없었지만 깊은 울림을 줬다. “우리가 자랑할 것, 내세울 것 없어요. 그저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 뿐 입니다.”
최종편집: 2025-08-09 18: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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