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좋습니다. 김송회(金宋會)는 ‘금송이’로 들리지요? 70이면 행장(行狀) 본인이 쓰거나 혹 누군가에 부탁을 합니다. 김송회는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서 출생, 와룡리에서 자랐고 ▲중학교 진학과 더불어 전주에서 삽니다. ▲자랑스러운 모습을 적어봅니다.
△전주공업고등학교 개교100주년이 다가올 무렵 총동창회장을 맡아 동창회관(효자동1가535-81)을 마련했습니다(동창회관 건립위원장:김송회/위원:최영관, 이대문, 김기천, 오상현, 김영구, 양길웅, 안호협, 이성실/2015. 5 문서). 전주공고 졸업생 절반은 압니다. 동창회장 아무나 하는 자리 아니지요. 유기정·김영구 국회의원이 했습니다.
△김 회장은 완주군 화산중학교에 장학금을 듬뿍 냈고, 화산면 종리 연세경로당을 지을 때도 기부했으며 연탄을 댔고 △마을길 넓히는 포장공사 때 큰돈을 보탰습니다.
△가양경로당이 서자 전자제품을 들여 놓았고 △해마다 양 명절이면 초등학교 유택근 은사(고산초교 교가 작사·작곡) 90수 때까지 선물을 챙겨 꼭 찾아뵈었지요. 여기에 이웃사촌 아무개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4촌 빚보증을 서 일이 잘못되자 논밭이 날아가는 아픈 상처를 입었으나 이는 지난 일이라며 4촌 만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하듯이 얼굴 한 번 찌푸린 적 없습니다.
△본인은 독신. 여러 여형제 다 잘 살도록 보살폈고 △‘고려종합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로서 성실합니다.
▲이런 고운 심성은 아내와 어머님의 미덕을 꼭 닮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고산 장에 다녀오는 장꾼 불러 밥 먹여 보냈습니다. ▲아버님(김재충) 상 때 조객들의 자동차가 동구 밖 1km 방천을 덮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시킨 외아들 개혼식(전주리베라호텔)에 청첩장을 아니 보냈고, 축하금 일체를 받지 않았습니다. 내외는 일가친척, 친구, 지인 애경사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여름에도 시금자 시루떡을 해들고… 늙은 친구 찾아다닙니다. 돈 있다고 다 이렇게 못하지요. 안동김씨의 천성과 본인 수양에다 부인(한씨)의 공감·묵인이 ‘대단한’ 집안입니다. ‘장년(壯年)’을 지났습니다. 앉아서 대접 받을 ‘장년(長年)’에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효자비가 즐비한(화산면 쪽골) 평택임씨 후손이며, 김송회는 고려 김방경(金方慶) 장군과 조선 초 ‘문 닫아 용렬한 자 끝끝내 접하지 아니하고(杜門終不接庸流)/ 오직 청산만 내 누대 들어오게 하려네(只許靑山入我樓))/ 즐거운 시 읊다 싫증나면 조나니(樂便吟哦慵便睡)/ 다신 맘에 한가로움 없게 하노라(更無閑事到心頭)’ 이 시를 지은 김구용(金九容) 대학자의 후예입니다.
서운타는 어른들의 얽힌 문제도 잘 풀었다고 들었습니다. 만경강 둑을 거닐며 이런 얘기 하는 완주 사람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