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게 노는 어린이를 볼 때마다 즐겁다. 그럼 나는 어릴 적 뭘 하고 놀았나?
마을 앞뒤에 냇가가 있어 대여섯 살 때부터 물에 들어갔고, 저수지 아랫마을이므로 농사철 비가 내리지 않아도 봇물이 펄펄 넘쳤으며, 수문을 닫으면 냇바닥이 곧 들어나 금방 다슬기를 몇 바가지씩 주워 담았으나 물고기는 잘 잡지 못했다.
다만 막고 품기는 익숙했다. 윗물을 돌리고 아래를 막고 품으면 물 반 고기 반. 메기, 짜가, 붕어, 모래무지 등을 잡아 바구니에 담았으나 미꾸라지는 고기로도 여기질 않았다.
날씨 좋으면 늘 물속에서 살았고, 가을 논엔 민물새우가 많아 몇 바가지씩 건져냈다.
누가 기록을 재주는 건 아니었지만 수영을 잘한 편이었다.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뜬 눈으로 손발을 휘두르면 쭉쭉 밀려갔다. 고산초등학교 뒤편 세심정 보안의 ‘자라바위’까지 금방 오갔다.
해마다 봄·여름 오기를 기다렸다가 천렵(川獵) 여러 차례를 했고, 장년이 돼선 10여 명이 소주 큰 통을 갖다놓고 마셨으며, 김봉회는 춤을 하도 추어 양말 구멍이 크게 났다.
그 친구 늙자 술 한 모금 못했고 귀 어두워 옛이야기 주고받기도 어렵더니 2021년 1월에 갔다. 그 며느리 박춘선 효부이었다.
나는 냇물에 들어서면 우선 큰 돌을 건져 보막이와 고기 집 만들기를 즐겼다. 2020년 여름 동상면 신월리 강대순 씨 사산(50만 평) 골짝 물속에 들어가 신명나게 노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저는 이 산 관리인입니다. 아저씨처럼 개울 바닥 치우시는 어른 처음 봤습니다.” 서로 빙그레 웃었다.
지금 고향 개울은 둑이 비탈지고 풀이 우거져 물 가까이 가기조차 어려운데, 운주·동상면은 바위와 바위 사이 ‘독탕’, ‘대중탕’이 흔하다. 이 좋은 자리에 이르면 옷을 입은 채로 풍덩! 뛰어드는 어릴 적 버릇이 튀어나온다. 한두 시간 놀다 보면 때는 저절로 벗겨졌고, 해수욕장 저리 가라한다.
사람 놀 줄 알아야 하기에 어린이들은 놀이공부가 꼭 필요하다. 우리 겨레는 즐겁게 노는 민족이다. 두 셋이 모이면 술잔이 오갔고, 노래(시조)가 나왔으며, 더러는 흥겨워 일어나 춤을 췄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이었다.
춤은 흥의 최고조 단계, 자기 기분을 제대로 보여주는 최상의 유희이었다. 학교와 유치원에 ‘유희’과목이 있었고, 지금은 무용이라 하며 훌륭한 예술이다.
모임에서 입담 좋고 노래 잘 부르며 춤 잘 추면 최고 인기였다. 이재규, 류윤상, 이문구, 이병옥, 신용덕, 송재성, 신용석, 조재영, 이명근이 이런 분들이었다. 이들이 잔치마당에서 어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즐겼다.
우리도 웃고 노래하며 춤을 추자. 얼굴 환하게 펼쳐보자. 웃는 시늉… 입이라도 크게 벌려보자. 완주 미소상(微笑像:비봉 우주황씨 묘역)처럼 빙그레 웃어보자.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