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하다보면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사회적 문턱이 높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여느 날처럼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하던 중 한 중년 남자가 어색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환자는 다소 긴장되고, 굳은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와 “제가 이 병원까지 오는데 정말 수십 번을 갈까 말까 망설였다. 내가 정신병자도 아닌데 이런 병원에까지 와야 하나?. 정말 치료가 필요하냐?”며 근래 들어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 환자는 사업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자주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며, 우울한 기분이었다고 호소했다. 더불어 근래에는 잠도 잘 못 자고 식사양도 줄어 체중이 5kg이나 빠졌다고 했다.
좋아하던 친구도 만나기 싫고, 가족들 눈치가 보여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방안에서 TV만 보며 지낸다고 토로했다.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누적돼 생긴 우울증 이었다.
나는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증상의 심각도를 고려해 약물치료도 시작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다행히도 그 환자는 다시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그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정신건강복지법 제10조」에 따라 5년 주기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작년에 시행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의 평생 유병률(평생 동안 정신장애를 경험한 비율)은 27.8%로 나타났다.
이는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이 평생 한번 이상 유의한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면서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정신 건강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며, 생각보다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이, 그리고 자주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신건강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제부터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까? 약한 수준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스트레스 요인이 해결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짧게 유지되거나 자연스럽게 호전 경과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고, 평소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수준이라면 가급적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신건강’이라고 하면 “알기 어렵고, 나는 잘 모르는데...” 라며 간과하기 쉽다.
가장 적절한 치료 결정 시기는 ‘정신건강 문제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겼어!’라고 스스로 알아차릴 때이다. 예를 들어 학생의 경우, 학교생활이 힘들고,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증상이 생기면 의심해 봐야한다.
또한 직장인의 경우에는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대인 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돼 기분이나 수면, 일상의 활동에 변화가 생긴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정신건강의 위기 신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이는 한없이 무기력하거나 무망하다는 생각이 종일 지속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과한 음주를 반복하며, 중독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아울러 특정한 생각이나 불안, 걱정에 사로잡혀 현실감의 저하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환청과 같은 정신증적인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즉, 평소 건강할 때의 ’나‘와는 다른 감정과 인지, 행동, 신체의 변화를 동반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늘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면 우리 몸의 자율 신경계는 늘 흥분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근 긴장을 유발하고 각종 소화계 기능을 저하시켜 면역력 저하, 두통, 근육통, 위염 등 여러 신체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반복된 음주는 간 기능의 악화뿐만 아니라 직장에서의 잦은 실수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가족 간의 갈등을 악화시킨다.
이와함께 적절하게 조기에 치료 받지 않은 정신증의 경우, 잘못된 생각, 즉 망상으로 인해 자해나 타해의 위험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 때에는 정작 본인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당사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힘들어 하는 이들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줄 수 있다.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 상담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병원 방문이 조금 망설여진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해 보는 것을 권한다.
전국 시·군·구마다 설치돼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 주민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료 정신건강 검진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전문가와의 상담, 약물·입원 등 보다 전문적인 병원 치료의 연계 등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신체 건강과 더불어 마음 건강까지 함께 챙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바로, 나와 소중한 가족,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봐라. “OO아, 오늘 마음건강 안녕하니?”
■강남인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현. 완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
-현. 전라북도 마음사랑병원 진료과장
-대한조현병학회 평이사
-대한노인의학회, 중독정신의학회, 약물정신의학회, 한국 트라우마 스트레스 학회, 대한조현병학회 평생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