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이 국치일. 고산 땅에 숫돌장수 석순돌(石舜乭)이 있었다. 가진 거라고는 힘과 돌 캐는 재주, 글은 오직 ‘바를 정(正)’ 외자뿐인데 조선이 망하는 과정에서 부자 됐다. 그의 양아들 석대성(石大城)은 1945년 일본이 망해 조선총독부가 없어지자 양아버지처럼 부를 일으켰다. 당시 사람마다 △명당에 묘 잘 쓰고 △타고난 운 좋으며 △무지해서 부자라고 했다. 힘이 세어 숫돌 짐을 남보다 두 배 이상 지고 다니는데, 마침 서울 임세동(任世童) 봉세관(封稅官=세금 걷는 직책)의 눈에 들었다. 무식할수록 재주를 부리지 않기에 쓸 만한 심부름꾼으로 봤다. 힘세니 일 잘 하고 남도 요령 있게 부린다. 암산실력이 보통이 아니어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창고에 물건 들고 날 때마다 수를 헤아리는 데는 벽에 ‘ㅡ,ㅣ,ㅡ, l, ㅡ(正=5)’자 하나면 그만이었다. 1910년 8월 29일 조선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첫 지시가 치안은 엄히 다잡되 ‘조선 관리들은 그냥 두고 보라’고 했다. 나라가 망해 무주공산이 되자 봉세관들은 거둔 세금 바칠 데가 없어 제 보짱대로 처리했다. 총독이 이를 모를 리 없지만 눈감아줬다. 이게 통치기법이다. 봉세관 임세동은 하루아침에 천석꾼이 됐고, 눈치 빠른 석수돌도 제 몫 500석을 챙겼다. 종중에서 ‘새 부자가 아들 없이 되겠느냐’며 명치대학 경제과를 나온 먼 일가 ‘석대성’을 양자로 추천했다. 학벌 좋으니 세무서에 들어갔고, 곧 윗자리에 올랐다. 부자이니 홀아버지를 위해 간호부를 고용했다. 석순돌은 늙었지만 젊은 여자를 좋아하며 때로는 부인으로 여긴다. 이럭저럭 한 5년이 지나 양아들을 불러 하는 말 “첫째, 일본 곧 망한다. 둘째, 니 작은 어멈(?) 한 백 석 줘라” 이 부탁을 하고 1943년 죽었다. 명치대학 출신은 아버지 말을 쉽게 알아들어 마음에 새겨두고 사는데 1945년 8월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자 1910년 조선과 똑 같았다. 1945년 9월 8일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군단 7사단 병력이 인천항에 들어섰다. 미국이나 존 하지 중장 30년 전 데라우치 마사다케에 뒤질 사람이 아니다. 이들도 역시나 모르는 체한다. 이게 점령지 정책이다. 석대성도 양아버지처럼 국고 문을 열어 그 돈으로 땅과 산을 여기저기에 사 뒀다. 이런 약점이 있는지라 몸과 재산을 위해 점령자가 시키는 대로 충견노릇을 하다 죽었다. 그 아들 ‘석신상(石臣相)’은 삼위제날 500만원을 넣고 갔으나 고향 마을에 아는 사람이 없어 그냥 오던 중 너무도 허탈하여 돈 강에 뿌릴까 망설이다 지역신문사에 들려 놓고 나왔다. 고향과 일가에 야박했음을 늦게나마 깨달아 다행이고 그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낫다는 소리 들었다. 어려운 기관 돕는 인정이 양심이요 자랑이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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