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이 많아 한강’이다”. “금강 ‘금쪽’ 같아 금강이다.” 이 소리에 서울 사람·공주 사람 “에이! 그게 무슨 소리여?” 반박하지 않는다. ‘만경강’ 제대로 연구하고 살펴보면 ‘한 많은 강’임이 확실하다. 비 적으면 ‘강바닥이 말라’ 만경강이었다. 지류로 탑천-세내-전주천-소양천 넷이라 ‘사수(四水 泗水:泗 콧물)’이었다. 고산 쪽에 비 많이 내리면 봉동·삼례는 방천이 무너지고 보가 터져 물난리를 겪었다. 이름 가운데 경(頃)자는 ‘기울다’이다. ‘만 가지가 기울었으니’ 강가 백성들 한 평생 한을 안고 살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자동차·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 눈에는 옛일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석전리는 돌이 많아 ‘석전(石田)’이고, 와리·석전 들판의 ‘뚝생이-뚝새기-뙤똥배기’가 거친 땅이었음을 말해 준다. 전라선이 깔리자 재치 빠른 일본인과 한국 사람이 얼른 대장촌-삼례-동산촌에 자리 잡았고, 만경강 둑을 쌓아 물길을 바로잡아 논을 일궈 부자가 됐다. 부자는 논을 자꾸 더 사 전북 10대 부호(이, 박, 윤, 황, 송…등)들은 소작인과 관계 좋을 리 없어 ‘소작쟁의’가 그치질 않았다. 이때 서학(西學)에선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동학(東學)측에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이 말이 쏙쏙 먹혀들었다. 도조 받은 볏섬이 태산을 이뤘고 밤낮 없이 기계를 돌려 겨만 벗기는 현미(玄米) 도정공장. 삼례는 왕겨만 쌓일 뿐 쌀은 모두 일본으로 건너가 농민은 굶주렸다. 젊은 지식인마다 ‘빈부 차 없이 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듭시다.’ 이 외침에 일본인과 부자들은 듣기가 싫어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삼례 농민들은 가뭄-큰물-가난-지주와의 다툼-사상 범… 맘 편한 날이 없었고, 투옥↔희생↔입산↔행방불명-감시-양봉-고향 떠남이 삼례의 근·현대사이었다. 강바닥을 파 둑을 쌓아올리니 물길이 깊어져 ‘침천(沈川)’이 되었다. 봉동 생강, 삼례 딸기농사 이런 연유의 영향이 크다. 왜정시대의 부자와 그 가족들 보이지 않고, 전남구례 운조루(雲鳥樓) 고택처럼 ‘타인능해(他人能解)’ 전설 하나 없이 사라졌다. 삼례 제1 한학자는 석은(石隱) 이병교 선생. 선생의 손 글씨 『석은사고(石隱私稿)』 세 권이 있는데 삼례 얘기 여기 다 있다. 이 책 번역에 완주문화원 새 원장과 권창환-송지용-권요한-유의식-이경애 의원이 군수와 아홉 군의원을 설득 5000만원만 마련하면 번역 출판 가능하다. 고통의 세월을 벗어나 축복의 땅 삼례를 이뤘으니, 두 아들과 安進會(안진회) 번역사가 건강할 때 책 내면 황금 알이 되고 남는다. 비비정 찬가는 접어두고 황두현 자선가의 노래를 소리 높이 불러야 한다. 사람은 좋은 사람 이야기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參禮’의 세 가지 예도(禮度)’가 새로워질수록 국운이 열린다. 유희태 새 군수 “‘나 만경강’이 되겠다.”했으니 힘차게 밀어줘야 하지 않겠나.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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