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파리가 귀찮게 하고, 밤엔 모기에게 뜯기며, 새벽에는 아이가 빈 젖을 빨아대어 잠마저 설치던 여인의 부음을 들었다. △“두견새야! 진달래야! 내 말 좀 들어다오.”, “두견새야! 니가 토한 피 뿌리로 스며들어 진달래 붉다면서?” 인간사 슬픔이 병 되고 한 되는 걸 봤다. △‘무운장구(武運長久)!’ 하얀 천에 천 사람이 한 땀씩 붉은 실로 수놓은 ‘천인침(千人針:せんにんばり)’ 띠를 두르고 태평양전쟁 터로 끌려가던 옆집 청년의 한숨과 △열일곱 살 삼순이가 정신대에 붙들려가던 날 60대 노부모 땅을 치며 뒹굴던 참상이나 △6·25전쟁 중 전사한 아들 백골 상자 끌어안고 목 놓아 울던 양촌 댁. △솥에 끓일 것 없어 밤새도록 투전판 뒤에 쪼그리고 앉아 개평 몇 푼을 뜯어(얻어) 주머니에 넣고 끄름 섞긴 콧물을 닦으며, 이른 새벽 들어서던 길동 아빠 △보릿고개 넘다 지쳐 달랑 이것뿐인 논 세 마지기를 싸게 팔아 목구멍에 풀칠하던 경남이 삼촌. △빚진 죄인(?)! 아들·딸·부인 앞에서 멱살을 잡힌 채 이리저리 뺨맞으며 발길로 차일 때 그의 딸 보다보다 못해 “차라리 날 데려가시오” 외치며 울던 모녀의 애절함이 어제 일만 같다. △남편 매와 구박을 견디다 못하여 세 살 백이 들쳐 업고 땅거미에 등 너머 친정 사립문을 밀치던 갑술 누나. △월사금 기성회비를 못 내어 책보 들고 쫓겨나 울며 집안에 들어서자 병든 아빠 문구멍으로 내다보던 눈물 젖은 그 눈동자며 △지계에 도끼·톱 얹어 산판에 갔다 다리 다쳐 업혀오던 창순 오라비 △3대 독자 급사로 상여 뒤를 따르던 쌍과부와 아홉 살배기 △“…며늘아가! 사람 모진 때도 있어야 한다. 정 때문에 청춘 망가뜨릴 순 없다. 어서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 니 남편 돌아오지 않는다.” 청상과부 등을 밀어 친정에 보내고 둑 넘어 보이지 않자 땅을 치며 통곡하던 두 노인네의 곡성이 귓전을 친다. △시골 교회 목사 무슨 사연인지 보따리 싸들고 남매 앞세워 부인과 떠나며 예배당 마당에 꿇어앉아 몸 흔들며 기도하던 그 측은하던 모습이며 △대학원까지 나와 외국어에 능통하고 법률지식 대단한데도 ○○○시험에 낙방 온 식구 망연자실하는 그 낯빛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2022년 6월 1일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낙선인들의 창백한 얼굴… 이 나라 정치계의 현실이다. 새옹지마란 말이 있지만 기대하기 어려운 허망한 비화이다. 흙수저-은수저-금수저 이 차등이 민주시민의 마음을 비틀어놓는다. 환한 웃음 떳떳한 자태 보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가. 가슴에 피멍이 든 사람들을 불러 두견화주 한 잔씩 권하며 위로해 주자. 입추가 오기 전에!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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