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7.4) ‘미국독립기념일’은 알아도, 모레(7.8) ‘옥사 80년’ 김춘배 아는 분 드물다. 1934년 11월 함흥지방법원 결심공판장에서 최후 진술.(전략) “첫째, 고메다(米田)재판장-고메하라(米原)검사장-나 사이(중략) 토론 신중했습니다.(중략) 양심에 따라야 할 법조인 여러분! 이 지리에 부모-아내-여덟 살 외아들이 나왔고, 가족 앞에서 마지막 말일 수 있습니다.” “둘째, 나 잡으려 쫓던 19일 동안 내가 만난 사람 괴롭히거나 벌주지 않기를 바랍니다.(중략) 법복 입은 여러분과 방청인은 일본 망하고 조선 해방-독립을 똑똑히 볼 것입니다. 조선사람 아무리 죽이려 해도 꺾을 수 없는 조선역사 5000년이 있고, 밟혀도 일어서는 단일민족 잔디 기질이 본성입니다. 10년 안팎에 중국대륙과 미주에서 태극기 앞세워 승전가 부르며 조국에 돌아올 것이니 자중자애하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 조선 먹고도 모자라 욕심 부리니 여러분 가슴팍 뚫릴 일 많을 것입니다.(중략)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최후를 보았지요?(중략) 제 한 목숨 좌지우지야 쉬우나 2000만 백의민족 그 넋과 혼은 저 태양보다 더 뜨겁다는 걸 알고 재판 기록 1만 폐이지 온전하게 전해주기 바랍니다.” “넷째, 여러분이 내 목숨 하나 총 한방 올가미 하나면 끝낼 수 있지만, ‘하늘 길(天道)’, ‘하늘 마음(天心)’, ‘하늘 기회(天機)’를 어기면 일본인 6000만 중폭격기가 내리 쏟는 폭탄에 본토 불바다 되리니 이 일에 맘 쓰지요.”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됐고, 재판장·검사 막을 수 없었다. 땅땅땅 ‘무기징역’이 언도됐다. 이 때 나이 28세. 왜 무기 징역인가. 1934년 10월 함경남도 북청경찰서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뚫어 장종 6, 권총 2, 실탄 700발을 들어냈다. 조선총독부 치안당국은 동원인력 2만, 비용 2만원, 19일 동안 ‘심야의 총소리’ 그칠 날이 없이 쫓고 쫓기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신출귀몰-전광석화-극적장면. 고향 삼례 들려 3만원을 마련하려고 기차에 올랐다가 붙들려 서른여섯 살에 옥사했다. 1906년 김춘배 태어난 자리가 삼례리 1385번지(삼례제일교회)요. 어릴 적 다닌 학교가 현 ‘삼례중앙초등학교’이다. 아아! 이보다 더 슬픈 일은 김춘배 의사의 공적 모두를 도둑맞았다. 망우리공동묘지에 ‘정춘산(김춘배 변성명) 묘’가 있는데 가족·부인 가짜이다. ‘완주문화도시(문윤걸)’, ‘미래 행복도시 완주(유희태)’에서 적어도 김춘배 의사를 ‘삼례 소녀상’ 정도로는 알려 나가야한다. 감옥 17년 결국 옥사! 나라 무어간데 하나뿐인 목숨 바쳤을까? 10만 완주군민은 서로 함께 알며 살아가자. 아는 게 힘이다. 당국과 지방 여러 단체는 합심하여 의(義)와 불의(不義)를 분명하게 밝혀 나가야 하지 않나.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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