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는 ‘서원’ 교육을 시발로 ‘여자고등학교’를 연 씨족입니다. 제집 숟가락 수도 모르는 숙맥이 남의 종중 얘기하는 이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받은 책 보고 들은 대로를 적어 고향을 자랑하며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자 이 글을 여기에 싣습니다. △『용강강당 흥학계서(龍崗講堂 興學契序)』. 서기1923년(계해) 이병은(李炳殷) 지음. 서문이 앞에 있고, 공부할 곳 마련을 위해 추렴(出斂)을 했는데 참여도가 대단합니다. ▲갈동파(15인) ▲용동파(42) ▲주덕파(3) ▲와리파(52) ▲동정자파(10)로 구분해, 벼 두 말(二斗)부터 10말까지를 냈습니다. △그 후 40년(1962년)이 지나서의 모금엔 타성들도 참여했습니다. 112인이 50원부터 1,000원까지 내도록 끌어당긴 그 추진력 놀랍네요. △1983년 세 번째 모금엔 120인이 1,000원부터 5만원까지를. 이 가운데 국회의원 3인(류청, 류범수, 류기정)이 있습니다. 왕대밭에 왕대 났습니다. △거창한 일도 매끄럽게 추진하여 1982년 11월 30일 ‘유일(柳一)여자고등학교 24학급’ 설립인가를 얻어냈습니다. ‘용강강당’ 마련에서부터 60년만의 대경사입니다. 어디 이런 집안 흔합니까? △ 『전주류씨 바로알기(감수 정훈, 편자 기송)』 62면을 함께 봅시다. 전주류씨는 ‘문화류씨·우주류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독자적인 씨족임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틀린 건 끝까지 추적해 바로 잡았고, 바른 건 절대 손대지 않아 ‘위작’이나 ‘날조의 시비가 없습니다. 전주류씨 시조비(할머님) 전주최씨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그 남편 ‘류습(柳濕)’은 ‘증 사헌부 장령(정4품)!’ 다른 집안 같으면 할머니와 격을 맞춘다며 ‘문하시중’이나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이런 관직을 끌어 붙일 수 있으나 ‘증 사헌부 장령’ 그대로 두어 오히려 역사가 빛이 납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잘 났다’ 이 소리 절대 나쁜 말이 아닙니다. 이러하니 관에서 할머니 시제 때 ‘소를 잡아라.’ 하였습니다. △『시사재지(時思齋誌)』를 냈습니다. 군지 한 권 못 내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는데 종중에서 재실에 관한 책(보면 놀랍다)을 내다니요. 고려 말 조선 초 전주에서 전주이씨-전주최씨-전주류씨 3성은 대단하여 혼인하며 매우 가까웠습니다. 6~70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존경하지만 남이 보기엔 전주류씨 종사가 더 앞서 갑니다. 류일수-류정훈-류기송-류해광 등 신진들은 그 높은 학식과 성의를 종사에 쏟아 부어 책이 나오고, 재실이 고쳐지며, 묘의 둘레 석을 바로 잡아 종중 문화를 더욱 빛을 냅니다. 사람마다 누군가의 길고긴 얘기를 듣고 싶은 계절. 고려병원 앞 버스승강장 광고판을 보면 ‘종사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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