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먼 산 나무 갈 때마다 어머니 새벽에 일어나 동이에 언 물 주걱으로 깨어 한 솥 끓여 식구들의 세수 물로 퍼 놓았으며, 밥 안치고 국 안쳐 아궁이에 불 집히면서 손등 손바닥 뒤집으며 불 쪼이고 이마 부뚜막 가까이하여 언 살을 녹이시던 어머니! 어머니! 치마 자락 걷어 올려 아랫도리에 더운 불기 쪼이시던 어머니! 어머니!
사랑방 안방에서 나온 조반상 치우면 돼지는 구정물 달라고, 닭은 모이 달라고 꿀꿀꿀…, 꼬꼬꼬… 한 바랑 시달리다 보니 뜰팡에는 밤새도록 빼 던져놓은 아기 지저귀 더미가 흉물스럽습니다. 빨아 한 줄 널고 나니 해는 벌써 울안 깊숙이 넘어 들었습니다.
적셔 둔 삼 올 앞니로 쪼개어 무릎 위에 놓고 비빌 때 아랫도리 시려도 참았지요. 보름인가 하면 금방 그믐, 밭에 나가보니 풀이 더 무성합니다.
호미 끝에서 불이 번쩍 나게 매었지만 이제 겨우 한 두렁. 열 고랑이나 남았는데 점심 챙길 시간입니다. 학교 다녀온 아이들 밥 챙겨주고 남새밭에 나가 쇤 상추 아욱 몇 주먹을 뜯어 무치고 끓여 상에 올리면 그 밥에 그 나물 내내 똑같았습니다.
식구들 여름 밥상에서 쌀 낱 찾으려 하지 않았고 막내 하는 말 “엄마! 앞 집 밥상과 우리 밥상은 왜 달라요?” 어머니는 충격이 커 부엌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밥은 언제나 주걱 긁엉이, 왼손엔 배추대가리 하나가 들려있었습니다.
두 달 건너 찾아오는 기제사. 시장에서 멸치 홍합 한 홉씩, 조기 명태 각각 한 마리, 쇠고기 한 근 사들고 집에 오면 떡쌀 절구에 빠았고, 시루에 떡 안쳐 번 붙이면 여기서 푸푸 저기서 푸푸 분주했습니다.
파젯날 아침 닭 한 마리 잡아 국을 끓였는데 바가지가 둥둥 떠다녔습니다. 대가리 하나, 다리 날개 각각 둘. 어머니 인심 잃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님 60 넘으시니 어깨, 무릎, 허리에 찬바람이 들었고 밥 줄여 퍼라 하시더니 약대접 입에서 떼시며 찌푸리시던 그 모습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 치마 속에 무얼 걸치고 사셨나요. 어머니! 어머니! 얼마나 떠셨습니까? 언 짚 한 다발을 때고 방바닥에 누우니 얼음장! 제 몸은 불덩어리… 그날 밤 저를 어머니 배위에 뉘어 재우셨답니다.
어머님 모시고 사우나에 간 기억이 없습니다. “천하 대죄인! 어머니! 어머니! 저 어찌 해야 합니까?” 장가보내는 날 “너 ㅉ보 안 돼 장가가는 줄 알라.” 예닐곱 살 때 사고로 아래 입술이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외과에 가지 못하고도 ㅉ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님 50∼60대에 지화 한 장 못 쥐어드렸습니다. 중앙시장 국밥집 앞을 그냥 지나 온 게 두고두고 한 입니다. 쌀밥과 고깃국 대접 앞에 눈물이 떨어집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