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치전투 압니다. 이현(치)싸움 얘기 들었지요. 3산[금산(錦山)-진산(珍山)-고산(高山)] 전투 치열했습니다. 왜군에게 금산에서 700인, 이현(치)에서 400인 7월 염천에 죽어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썩은 냄새 산천을 뒤덮었지요. 황박(黃璞:1564∼1592/29살)의병장 여기서 전사했으며, 이긴 장군은 권율(1537∼1599) 광주목사였습니다. 호남이 이래서 지켜졌지요. 희생이야 컸지만 천만다행 이긴 소식을 의주의 선조대왕께 알려야 하는데, 휴대폰, 팩스, 방송이 없던 시대라 알릴 전령(傳令)을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꼬리를 뺐지만 “이현(치)싸움 이긴 소식 제가 전하겠습니다.” 16세 소년이 자청하고 나섰지요. 고산(高山)을 떠난 소년은 왜군을 피하며 2,700리 의주(義州) 먼 길을 나셨습니다. ▲옻나무를 꺾어 그 진을 온몸에 발랐지요. 금방 옻이 올라 문둥병 환자처럼 온 살갗이 물러 터지고 땀과 고름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운주→논산→공주를 지나→금강→한강→임진강→대동강→청천강을 건너 임금님 계신 곳(행재소)을 찾아갑니다. 거지 중 상거지로 옷-몸꼴-둘러멘 망태 누가 봐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왜군 막사에 들어가 구걸하면 밥덩이를 던져주며 내쫓았습니다. 행재소 정문에 이르러 병조판서 만나기를 간청했지요. 판서 앞에선 거지 소년은 “제 이름 정충신(鄭忠信:1576∼1636)이며, 권율 장군 장계를 가지고 왔습니다.” 병조판서는 놀라 뒤로 넘어질 번했으며, 우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먹여 임금 앞에 세웠습니다. “장계는 어디 있느냐?” 정충신이 내민 건 메고 온 구렁망태. 소년은 “망태를 살펴 주시옵소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시관(侍官)이 조심스레 망태 엮은 끈을 풀어보니 글이 나옵니다. 권율 장군은 종이에 계문을 써서 칼로 오려 노끈을 꼬아 망태를 만들어 충신에게 메어 주었습니다. 선조대왕 크게 놀랐습니다. 임금과 신료들은 정충신의 공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왕은 뒤에 ‘충무공(忠武公)’ 시호를 내렸습니다. 이래서 바다에는 ‘충무공 이순신’ 육지에는 ‘충무공 정충신’이 있습니다. 임금은 ‘금남군(錦南君) 봉호(封號)’를 주셨고, 전남 사람들 역사 인식이 높아 광주 번화가 이름을 ‘금남로(錦南路)’라 했지요. 전남 이 정도면 충효예가 살아있다고 봅니다. 들은바 적어 무지의 소치이나 완주에 인명 든 길 이름 생각이 별로나지 않네요. 김춘배(독립운동)-고정식(독립자금)-윤건중(장관)-권삼득(판소리)-유지명(의병장)… 찾으면 역사 인물들입니다. 옥(玉)은 갈아야 보배이지요. 목숨 받친 분들의 후과로 잘 살면서 모르는 척해선 도리가 아닙니다. 지역 인심과 의리 문제입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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