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은 대둔산에서 진산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이치(梨峙)’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우주황씨 기록에 ‘이현’ 표현이 많아 이현을 존중합니다. 임진왜란 중 이현 여기서 싸우다 죽은 사람이 엄청나나 거의 무명용사입니다.
이 가운데 유독 들어나는 인물이 황박(黃璞) 의병장입니다. 아래 글은 황박 장군 최후 장면을 연상한 시입니다.(2018. 12. 4:梨峴之忠靈(이현지충령).
“몸통 총알 뚫린 구멍 쉬파리 달라붙고/ 7월 장마 찌는 더위 사타구니 물러 터졌다/ 허리 춤 화살 통에 피가 넘쳐나고/ 덤불 속 400 주검 슬피 울었다./ 거둘 자 없어 썩은 냄새 코를 찌르며/ 겹쳐진 주검 위에 개미 떼 기어오를 적에/ 황박 장군 아∼아∼아∼! 외친 그 한 마디/ 배재야! 나 여기 썩어 한 줌 흙이 되리다.” [彈丸揷肉蟲蠅集(탄환삽육충승집)/ 炎天長霖腐睾間(염천장림부고간)/ 腰革箭筒溢血汗(요혁전통일혈한) 四百屍身柴中哭(사백시체시중곡)/ 無拾未殮鼻痲臭(무습미염비마취)/ 復積死體登蟻群(복적사체등의군)/ 黃璞將軍一聲吼(황박장군일성후)/ 腐餘梨峴化墳土(부여이현여분토)“]
황박 의병장은 1592년 여름 전사했습니다. 당시 아버님 복을 입은 상인(喪人)이었고, 아들 둘(수억·수백)에 처(전의이씨)·어머님(전주최씨) 네 식구 앞에 갔습니다.
전사했으나 여름철 주검 거두지를 못해 부득이 고산면 어우리 샘골에 단소로 모셨지요. 그런데 세상인심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황박 장군과 비교되는 인물이 황진 장군(장수 황씨)입니다.
황진 장군(1593년 전사)의 유적은 남원에 대단합니다. 그러나 황박 장군의 사적은 드물고 겨우 역사책에 글자로만 남아있어 한문 아는 사람이나 읽고 넘어가지요. 그런데 박(璞:옥돌 박)을 ‘복’이라 발음 하니 이 이상 더 서글플 수 없습니다.
대전 현충원 백선엽 장군 묘역 안내판은 과잉친절 문제로 치운다는데, 시골 어른들은 나이 들어 자꾸만 줄고 밖으로 빠져나간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어 역사이야기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다니 씨족들의 염원을 누가 풀어 주려나요.
진리문제를 떠나 기독교 세력이 대단합니다. 이러며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을 세우는데, 시장·도지사·국회의원 외면 못하고, 정부 돈을 많이 끌어왔으며, 주최측 헌금(獻金) 내역 놀랍네요. △전주안디옥교회·예수병원·(주)하림·프러스건설은 1억원 이상 △원필연 목사는 2억원을 냈습니다(전북기독신문 전면광고).
완주에서 관광의 해(2021-22)라니 대둔산 구경 온 손님마다 이현승전지를 들리도록 눈에 잘 뜨일 큰 시설물(815cm)을 세우면 어떨까요.
역사공부는 현장방문이 최고입니다. 이말 맞지요? 문화완주에서 새 역사를 되찾아 빛을 냅시다. 스물아홉 살 장군께 이 늙은이 절합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