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류씨-전주이씨-전주최씨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세 집안은 지난 700년 동안 혼인하여 서로를 잘 압니다. 외가 고모 댁으로 세세장구 지금에 이릅니다.
책을 펼치기 전 절할 정도의 귀중한 책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전주류씨 집안 필사본입니다.
△『용강강당흥학계서(龍崗講堂興學契序)』. △서기1923년(계해) 이병은(李炳殷:1877∼1960)이 서문을 썼는데 △그 첫 마디… ‘아! 슬프도다.(오호:嗚呼)’로 시작합니다. △ “지금 천하에는 ‘사내도 없고’, ‘여자도 없으며’, ‘애들도 없고’, ‘가르침조차 없다.’”… 가슴이 찡합니다.
△피폐된 용강사를 새롭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집집마다 돈을 내야하는데 그렇다면 ‘흥학계(興學契)를 결성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씨족 중 신근(新根) 님 대단하며 △책의 짜임새가 좋아 보기 편합니다.
▲범례 아홉 조항에 ▲좌목(座目) 앞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갈동파(葛洞派) 15인(벼 20두, 돈 1원) ▲용동파(龍洞派) 43인(65두) ▲주덕파(周德派) 3인(6두) ▲와리파(瓦里派) 52인(107두, 110전) ▲동정자파(東亭子派) 10인(20두). 참여자 이름마다 고귀한 기품이 풍겨 나옵니다.
△40년이 지난 1962년(임인) 류씨를 포함 군민 111인이 기부금을 냈습니다. ▲111인을 움직인 중심인물의 역량과 그 품위를 상상하며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1923년(계해) 흥학계(1923:계해)를 연 지 40년! 체제를→‘용강원모현계(龍崗院慕賢稧)’로 바꿨고 ▲새 서문은 류학수(柳鶴洙 종인이 썼습니다. ▲해서체로 최초 이병은 선생 글보다 읽기가 편해 다행입니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착한 일을 즐기자(호학낙선-好學樂善)’을 강조했습니다. ▲새 좌목에 120인 참여자 중에는 류청(柳靑:1만원)·류기정(柳琦諪:5만원)도 있습니다.
△용강서원 도서목록(22권)이 있고, △제기(祭器) 목록에는 종류와 수량이 자세합니다. 전주류씨의 흥학(興學)정신과 모현(慕賢)사상은 한국 문화사에 독보적입니다. 흥학으로 시작한 전주류씨문중은 60년이 되는 1982년 11년 30일 ‘유일여자고등학교(柳一女子高等學校) 설립인가(24학급)’를 받아냈습니다.
전주최씨 전주이씨 집안에서 불 수 없는 일이지요. ‘왜 남자고등학교가 아니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류습시조비(柳濕始祖妣)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전주최씨)를 경모하자는 시사(時思)정신이 아닐까요?
1923년 용강사 흥학의 열정이 인후동에서 만발했습니다. 전주류씨는 확실히 다릅니다. ‘꿈과 열정이 살아 숨 쉬는 학교’ 이게 유일여고의 교육이념입니다. 종보(宗報)를 내다 중단하며 설명도 부족한 모씨는(공신집) 이 글을 여러 차례 읽어 보고 의관을 정제를 다시 해야 합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