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울었느냐’ 묻지 마세요. 졸업 사진 보며 울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졸업식은 있었고, 학교 어렵게 다닌 사람일수록 ‘졸업하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운해서 울었지요.
운동장에서 졸업식 마치고 졸업장 받아든 적은 있으나 학생 없는 졸업식은 신문 사진보고 알았습니다.
빈 교실에 달랑 ‘축 졸업’ 석자를 붙여놓았네요. 선생 님 혼자 서서 고개 숙이고 있네요. 혹 우는 게 아닌지요. 아마 저라도 울음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사진 속 선생님은 분명히 우실 것입니다. 졸업장을 들려 보낸 여러분 미안해요. 부끄럽습니다. 안타깝네요.
‘비·걸레·양초·노랑물감·헌책·빈병·쇠붙이·환경정리비용·졸업사진 값·풀씨·뗏장·꽃씨·퇴비 만들 잡풀·쥐꼬리·육성회비 가져오라’, ‘언제 가져 올레. 약속하라’, ‘부모님 모셔오라’ 성경에 나오는 세리보다도 더 못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고개들 체면이 아니네요.
졸업여행에 돈 없어 따라나서지 못한 학생 있었습니다. 공과금 못내 학교 졸업 못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교원노조도 없어 질문이나 학생 편에서 바른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지요.
아이들 보기에 선생은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어렵게 공부했던 저였지만 어려운 학생 졸라대며 무섭게 굴었던 일을 생각하면 목 놓아 울고(목매고) 싶습니다.
“순희야! 영희야! 철수야! 만수야!…제발 나더러 ‘선생’이라 부르지 마라.” 이게 진심입니다. 졸업할 무렵이면 담임 모르게 졸업비 명목으로 돈을 걷었지요. 이 돈 못 낸 학생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런 사은품(?) 받은 시절을 회개합니다.
당시 학생이나 학부모 편을 들어 ‘학생 위하는 체’했더라면 이 목 남았을까요? 무능하고 무력하고 담력 없어 학생들을 옥죄었습니다. 변명 말라 해도 달게 받으렵니다.
상급학교 진학원서 내지 못하는 학생 앞에서 할 말 잃은 아픔이 있습니다. 소한 대한에 양말 신지 못하고 다니는 학생 적지 않았습니다. 죽어야 잊을 일이 많습니다.
금초하고 식당에 들어서니 인사하는 중년이 있었고, 계산대에 이르자 이미 받았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비과(과자류) 하나 못 사줬던 그 학생이 냈습니다. 그도 나이 70이상 이 글을 읽으며 허공을 바라볼 것입니다.
좋은 옷이 수거함에 들어가고, 큰 길에 자동차가 넘쳐나네요. 빈 교실 졸업식에 맘 아프네요. 저는 너무 앞서 태어난 게 부끄럽습니다.
만천하 학생들이여! 미안해요. 너무 변한 학교풍토와 교육환경이 더 이상 안쓰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아픈 기억을 딛고, 오늘을 자신 있게 사는 분들에게 희망의 문이 열리소서.’ 휘어지고 굽어지고… 인생 길 여기까지 산 것 부끄럽습니다. ‘교무실 청소가 인권 침해라면서요?’ 허허허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