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해·달 얘기 한 없듯 만경강 역시 그렇다. 완주문화원 원보 제호가 『만경강』. 기타 시-글-노래-그림-사진 외에 포럼-물고기-물벌레-풀-돌-모래… 입에 오르지 않는 게 없다.
만경강 지킴이까지 있어 좋은 일이며, 섬진강에 김용택 시인이 있고, 세월 따라 가수·노래 계속 나오기에 나도 몇 마디 보탠다.
△만경강 부분명 마천(馬川), 고천(高川), 침천(沈川)을 알아보자. ▲마천은 ‘큰 내’라는 뜻이다. 마(馬)는 타는 말 외에 ‘크다’이니 큰 내라는 ‘한내(漢川:한천/大川:대천)’와 같은 말이다.
▲고천은 강바닥이 높아 ‘높은 내’ 지형이 이럴 경우 물 끌어들이기가 쉽다.
▲沈川은 ‘심천’이냐? ‘침천’이냐? 읽기부터 어렵다. ‘沈’의 본래 뜻은 ‘가라앉다’, ‘잠기다’이며, 성 자로 읽을 때 ‘심’이다(심청·심수일).
만경강에서 ‘침천이 옳고’, 침천(沈川)은 강바닥이 깊어 물이 저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침천을→심천, 심천이→‘신천’ 이리 된 까닭이니 바로 잡아야 한다.
낮은 물을 논에 대려면 보를 높게 막아야 했으니 △만경강에 보(洑)가 많다(어우보, 노은보, 구만리보, 구만보, 장자보, 신천물보, 벌떡보, 한내보). 보마다 특징과 유래 전설을 지녔는데, ‘벌떡보’ 얘기가 재미난다.
전설이지만 ▲‘물만 불으면 보가 벌떡 일어나 터져 떠내려갔다. ▲가물어 논바닥이 타자 농부 병이 나 누었는데 위쪽 지방에 비가 많이 내려 냇물이 불어 ‘농짝 같은 물이 논에 들어온다.’ 기쁜 소리에 누워있던 농부 ‘벌떡 일어나’ 벌떡보란다.
▲벌판 둑처럼 되어 있어 ‘벌 둑보!’ 그 발음이 슬쩍 바뀌어 ‘벌떡보’…. 남자들 새벽에 양다리 사이 벌떡벌떡 일어남은 건강함이니 이리 붙이나 저리 붙이나 재미나는 얘기이다.
구만리(九萬里)는 봉동[鳳翔:봉상)]땅. ‘봉강(鳳岡)’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 시절 최양(崔瀁:1351∼1424)과 이방간(李芳幹:1364∼1420) 두 분 한 마을에 사셨다. 대인들이 겪는 정치상황은 동병상련.
만육 최양 선생이 “망우당!(회안대군 호) 한양 올라갈 생각 있나요?” 물으니, 망우당 대답 “이 고장 봉상으로 봉황새 빙빙 떠오르면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뿐입니다.”
만육 선생 이 말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허허! 아직 60도 못된 망우당이 내 앞에서 그게 할 말인가?” 이러다가 망우당 1420년 3월 9일 은진에서 서세했다.
영웅들이 주고받던 말 가운데 ‘구만리장천’ 소리가 백성들 머릿속에 박혀있어 마을 이름 ‘구만리’란다. 동네 서쪽 고인돌에 새겨진 ‘봉정(鳳亭)’ 두 글자는 해석에 따라 소설이 될 바위글씨이다.
만육 선생은 망우당을 보내고 4년 동안 강둑을 홀로 거닐며 “아! 이 물이 망우당 나오는 걸 ‘막은 내’인데…” 유래이다.
소양천과 합해지는 곳까지를 ‘고산천(高山川)’. 이 이름 그냥 받아들이는 봉동주민의 배려심이 완주 자랑이다. 다리놓고 이름 싸움하다 개통 못하는 곳을 보고 하는 말이다.
/ 이승철 =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