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參禮)에 ‘예(禮)’자, 봉동(鳳東)에는 ‘봉(鳳)’자 들어 예사롭지 않은 고장이다. 전주부(府)는 모악산에서 가까운 명당. 예전 역사 완산(完山)까지를 포함해 오래된 저자(도시) 마을이다. 여기 사는 사람마다 먹여 살린 땅이 바로 봉동·삼례 들판이었고,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편에서 ‘천 마을 만 부락 이용할 물건이 여기에 다 갖춰졌다.…’ 이렇게 표현을 했다. 불명산(경천면), 왕사봉(운주), 운암산(고산), 운장산(동상), 원등산(동상), 위봉산(고산), 서방산(용진), 천호산(비봉), 봉실산(봉동), 모악산(구이) 등이 뒷받침을 다해준다. 여기서 발원한 물이 봉동에서 큰내(大川:대천)를 이뤄 만경강(萬頃江)인데 △‘전주 골을 달려가는 물길이어서→주야로(州野路)’ △‘들판을 달려가기에→주야로(走野路)’ △‘밤낮 없이 흐르는 물길이라→주야로(晝夜路)’ 다 맞는 말이다. 이중환은 공주 갑천이 첫째, 전주(삼례·봉동) ‘율담(만경강)’을 두 번째로 쳤다. 지명 여기저기에 ‘용(龍)’, ‘거북(龜:구·귀)’, ‘봉황(鳳凰)’이 들었다. 삼례면(읍) 이전은 창덕면(昌德面:1895년), 또 그 앞서는 ‘오백조면(五百條面)’이었다. 오백조를 ‘오백주(五百洲)’로 적은 건 만경강의 흐름 가운데의 모래자갈이 쌓여서 이뤄진 작은 섬 즉 모래톱을→‘주(洲)’라 하는데서 따온 글자이다. 강을 제대로 살펴보고 표현했으니 그 관찰력 대단했다. 봉동 원이름은 ‘봉상(鳳翔)’으로→봉황이 빙빙 돌아 하늘로 오르니 이 이상 좋을 수 없다. 삼례·봉동 이름 자체가 고상하고 진취적이다. 회안대군 귀양살이 20년 여러 곳을 거치다 자청해 들어온 곳이 봉동읍 구만리로 그 선택이 절묘하다. 전주 물은 북쪽으로 흘러(역수:逆水) 곱게 보지 않는 편인데 전주천과 소양천 물이 ‘만경강(한내) 큰물에 가로막혀 서류(西流)하는 지역’에 정착했고, 서류는 ‘새가 둥지를 튼다’이니 참모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대군 합하! 이 지역 500가지 조건(條件)이 한양(漢陽) 못지않습니다. 호남평야와 이어졌습니다.”, “봉실산이 있어 봉황이 나르고, 용진이 이웃하여 용이 꿈틀거리며, 구미리(龜尾里)는 왕도(王都)가 설만한 땅입니다.” 오백조(五百條)면 이 이름 나올만하지 않은가? 조카 세종대왕이 올라오시라 하여 1420년 3월 초여드레(음) 마음에 내키지 않으나 어명이라 출발하여 가는 길에 통곡을 했다. ‘통곡한 자리’가 바로 봉동읍 통샘(통정, 통골, 통곡).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신비한 지명이다. 호사가(好事家)들은 “완주군청 봉동으로 왔어야 하고, 청사 여기 들어섰더라면 추진 주역들도 관운이 승승장구했을 터인데…!” 이런 말 하는 사람이 많다. 시대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길러나가야 후회가 없다. 새해 덕담 ‘선견자·참모를 잘 만나야 성공의 문이 활짝 열린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6: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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