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감을 수확할 때, 다 따지 않고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 두는 감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구이면을 중심으로 시(詩)를 좋아하는 주부들이 모여 만든 동인회 이름도 ‘까치밥’이다.
지난 2011년 11월부터 회원들이 매월 직접 쓴 2~3편의 시를 모아 까치밥 회보를 만들었다.
1년을 채울 수 있을까? 까치밥은 의문부호를 달고 시작했다. 하지만 사계절을 아홉 번 버텨내 어느 새 100호를 돌파하면서 감탄사로 바뀌었다.
먹이가 부족한 한겨울에 날짐승들이 굶주릴 것을 염려해 남겨둔 까치밥의 의미처럼, 회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100호 발간을 가능케 했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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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개월 만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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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모악작은도서관. 까치밥 시동인 회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101번째 회보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편집을 마친 회원들의 동시와 시, 손님 시, 어린이 시 등 총 16편을 A4용지에 복사해 손에 들기 편하고, 가방에 넣기 알맞게 잘라 스테이플러로 제본한 다음 테이프로 마감해 12월호를 완성했다.
사실 12월 호는 어렵게 탄생됐다. 지난 2월 100호를 만든 뒤,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모임이 중단되면서 불가피하게 회보제작도 멈췄다. 이후 10개월 여 만에 만나 감격적인 회보를 만들게 된 것.
마스크 때문에 예전처럼 서로의 얼굴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다시 시를 쓰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에 더해 이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뜻에서 101번째 표지제목을 ‘우리, 다시’로 붙였다.
김숙미 회장도 ‘101호에 부치는 글’에서 까치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 창간호부터 백번의 까치밥 꽃송이를 피워 올렸지만 뜻하지 않는 코로나19때문에 한동안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움츠려 들었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새롭게 출발합니다. 까치밥 101호로 소박하지만 각자의 향기로 작지만 각자의 모습으로, 까치밥이란 아름다운 꽃송이가 그치지 않고 피어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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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시동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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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시동인은 지난 2011년 11월 4명으로 결성됐다. 현재는 김숙미 회장을 중심으로, 김미정, 김경숙, 유선희, 이소영, 김건희, 백경남, 김미현 등 8명이 까치밥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맨 처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한 모악작은도서관의 ‘시 창작교실’에서 교육생으로 만났다.
당시 안도현, 김용택 등 내로라하는 시인 작가들로부터 시 쓰기 수업을 받았다.
강사 중에는 완주 출신 유강희 시인도 초청됐는데, 수업을 하던 도중 시동인 모임을 권유했고, 이름도 ‘까치밥’으로 지어줬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까치밥 시동인 구성이 완료됐다.
이후 2011년 11월 14일 유강희 시인의 격려사와 동인들의 시를 더해 역사적인 창간호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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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깐깐한 입회, 까치밥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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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시동인은 동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 창작과 회보를 만드는데 목적을 두고 창립됐다.
중요한 것은 아무나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한 달에 1회 회보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회비를 내야 한다. 또한 첫 3개월 동안 준회원으로서 정기모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 다음엔 본인의 간절한(?)희망을 동인들에게 보여준 뒤, 과반 수 이상이 찬성하면 비로소 정회원의 자격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시를 좋아해야 하고, 창작시를 한 달에 한 편 이상 3개월 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입회가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회칙이 무너지면 까치밥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텃새라고 치부하고, 회칙에 불만을 갖는다면 아예 들어올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까치밥 시동인은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수요일 오전 9시 30분에 모악작은도서관 동아리방에서 모임을 갖는다.
둘째 주에는 시인의 시와 동인 시, 좋은 책 구절을 나누고, 함께 편집회의를 한다.
넷째 주에는 동인 시와 손님 시, 어린이 시 등을 모아 회보 작업을 하고, 봉투에 넣어 독자들에게 우편 발송을 한다.
창간호부터 101호까지 호당 20편 안팎의 시를 담았으니 대략 2000여 편이 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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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두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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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글을 남에게 보여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까치밥 동인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지금은 조금 무뎌졌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시를 읽게 하는 것이 마치 벌거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처럼 창피하고,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단다.
오죽하면 ‘군수님에게 보내주지 말고, 우리끼리만 공유하자’고 했을까? 하지만 주변에서 도움을 준분들 덕분에 조금씩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됐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시를 아무리 시를 좋아한다하더라도 지칠 때가 왜 없겠는가? 영감을 얻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삶에 시련을 겪는 등 슬럼프가 찾아오면 모임을 다 내려놓고 싶단다.
그런데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 어떻게든 써 낸다. 누구 하나 어기는 사람이 없다.
까치밥 동인지가 100호를 돌파한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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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기본, 다재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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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던, 못 쓰던 상관없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까치밥 시동인이다. 어째든 시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두 감성이 풍부하다.
또 오랜 시간 만나다보니 모임이 단단하다. 모난 사람 없어 배려하고 양보하니 협력도 잘된다.
이제는 시를 읽으면서 현재의 마음 상태를 알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돼 때와 상황에 따라 위로와 격려로 서로를 챙긴다. 까치밥 시동인이 가진 강점이다.
까치밥 시동인은 시 뿐 아니라 다른 재능도 많이 갖고 있다.
이소영 회원은 지난 2013년에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공모전에서 ‘기차표 고무신’이 선정됐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제72회 한국국보문학 시 부문에서 ‘국화차’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김경숙 회원은 지난 2018년 10월 동서식품이 주최한 동서문학상에서 동시부문 입상을 했고, 김건희 회원은 지난해 한국미술대전서 서양화 비구상 부문 동상을 받는 등 미술 분야에도 빼어난 소질을 갖고 있다.
김미현 회원 역시 올해 열린 온고을 미술대전에서 민화부문에서 입선할 정도로 미술 실력이 탁월하다.
특히 민화를 배운지 4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업작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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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시집 내는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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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시동인 회원들은 각자 시를 모아 시집 내는 것을 꿈꾸고 있다. 1호 당 2~3편의 시를 냈으니 한 사람이 200편 이상 쓴 셈이다.
올해 코로나19로 100호 발간 축하 파티를 하지 못해 내년으로 미뤘다.
마침 내년이 까치밥 시동인 창립 10주년이 된다.
창간호부터 시를 열심히 써 보냈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됐다. 당시 초등학교 졸업할 때 아이들이 쓴 시를 문집으로 만들어 선물해 줬는데,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지 않을까?
까치밥 시동인의 산파역할을 했던 유강희 시인, 파티를 열게 해준 안도현 시인 등 100호를 돌파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내년 10주년 기념식에 이들을 초대해 근사하게 파티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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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시동인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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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돌파를 기념하며 회원들에게 한 마디씩 바람을 들어봤다.
△김숙미 회장 : 지금 9년이 됐는데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모임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김미현 회원 : 200호, 300호 될 때까지 모임이 이어지고,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작품을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여 꾸준히 열심히 참석하겠습니다.
△유선희 회원 : 앞으로도 힘든 시간들이 있을 텐데 서로 격려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건희 회원 :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견뎌내고 잘 이어 나가길 바랍니다. 파이팅!!
△김경숙 회원: 100호를 맞아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내년에는 시 수업도 받고 싶고, 더 많은 회원들이 들어와 시동인이 활성화하길 기대합니다.
△김미정 회원 : 코로나19시대에 까치밥 동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글놀이의 정서가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소영 회원 : 까치밥 시동인을 탄생케 한 유강희 시인에게, 그리고 자리매김하도록 열심히 참여해 주신 회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개를 떨굴때까지 글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