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쓰느냐’ 물으면 나도 모르겠고 이 있어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니 정직하게 쓴 사람이 많다.
운주면에 안심사가 있고, 이 절 6·25전쟁 때 불에 타 지금 건물은 그 뒤에 세운 새집들이다. 그러나 비석은 타지 않아 옛날이야기를 알 수 있다.
글 지은 김석주(金錫冑)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썼다. 그렇다면 아는 건 확실하다는 말이 되어 이래서 믿음이 더욱 간다.
절 지을 때 시주한 고산 사람 이름이 있는데 군민들은 혹 자기 할아버지 아닌가 확인해 보기 바란다.
장일봉(張一奉), 김두성(金斗星), 석순담(石順談), 김경화(金景華:참봉), 황세억(黃世億), 강위필(姜渭弼), 김상철(金上哲), 양수정(梁水淨), 김사옥(金士玉), 김경택(金鏡澤:통정), 변시위(邊時位:가선), 김선기(金善己), 김수창(金守昌), 김필원(金弼元:통정), 최일신(崔日新), 김수명(金修名), 민남산(閔南山), 이영필(李榮必), 정필이(程必伊), 김선기(金善己). 글씨는 홍계희(洪啓禧)·유척기(兪拓基)가 썼다.
지금은 도립공원 대둔산(大芚山)이라 하는데, 도솔산(兜率山)이 나온다. 이는 안심사 쪽 대둔산 부분 명으로 보면 될 것이고, 숙정암 터 암벽에 두솔산(兜率山) 새김이 있어 크게 혼돈할 일은 아니다. 사실을 밝히는 데 화암(花岩) 한귀복(韓貴福:향토문화연구가)의 글이 크게 도움이 됐다.
우리 군 담당자도 잘하지만 순창군 산림공원과장이 화산면 종리 출신 박현수(朴賢修)로 용궐산(龍闕山) 치유의 숲(휴양림)을 만들며 6년 동안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인걸지령(人傑地靈) △상선약수(上善若水) △산광수색(山光水色) △수승화강(水昇火降) △요산요수(樂山樂水) △현미지좌(賢美之坐) △치심정기(治心正氣) △줄탁동시(啐啄同時) △신상구(愼桑龜)를 자생 식물공원 바위에 새기는 한편 바위길(하늘길)을 내고 있다.
바위새김을 본 군수→부군수→국장→주민(학계)이 “‘어려운 한자’를 왜 돈들여 새기느냐. 이렇게 제동걸지 않더냐?”고 물으니 현장에 나온 군수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더란다.
화산(華山) 사람이 순창(淳昌)을 빛내고 있다. 윗녘·아랫녁 문화 차이다. 하여간 반가운 소식으로 빼앗아오고 싶은 인물이다.
글과 조각이 역사다. 완주군에 바위 많고 재정 넉넉하니 누군가가 한 번 시작해 볼만한 일이다. 마을마다의 정자에 간판을 걸어 그 이름을 통해 깨달음을 갖게 해보면 멋진 사업이 되겠다.
‘바르게 살자’ 이 비석 모르고 그냥 넘어가나 외국인이 비판한다. 전에는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사실을 알리며 이어갔다. 불망비(不忘碑)는 좋은 일·나쁜 일을 잊지 말자는 비이다.
완주서 가장 오래된 비는 이서면 이성동 추탄(楸灘) 이경동(李瓊仝) 묘비로 조선 성종 때 세웠으니 오래되었다. 지방문화재 지정이 어려운가?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