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걸지령(人傑地靈)’. 지역 좋아 인물 나고, 사람 나 고장 들썩거린다.
고창군 대산면(大山面)은 전북 남쪽 끝, 완주 화산면 춘산리는 북쪽 귀퉁이다. 대산면은 평평한 지대이나 춘산리는 산골.
이 산골에서 태어나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하여 지인들의 기억이 자꾸 멀어져 가니 이를 인생무상이라 한다.
부부 해로라면 이글 쓰지 않을 것이다. 1936년생 85세 노옹을 찾는 이가 적지만 산골 물이 세다고 젊어선 농사하며 헌신 봉사로 바쁘게 살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 화산면부위원장 △완주군예비군 대대장부관 △북전주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 △화산면정화위원 △화산면방위위원 △화산면농협대의원 및 이사 △완주군새마을지도자로 일본시찰 △화산면김해김씨종친회장 △화산면자치위원 △농촌지도소 덕동자치회장 △화산면 춘산개발위원장 △춘산초등학교 학부형회임원 △고산고등학교학교 운영위원회임원 △6·25참전용사 국가유공자운영위원(이하생략)
‘이 정도면 면장(임명제)→군의원→도의원을 했어야하지’ 이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당사자 김종준 님 하려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들썩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 유지로 불려나와 일속에 빨려든 게다.
거마비·회의비·자가용 없던 시절 유지라는 신분은 희사금·협찬금·찬조금을 내는 인물(자리)이었고, 이러다보니 상가, 혼례식장, 회갑집 하루에도 몇 군데를 뛰어다니는 발 넓은 사나이였다. 집안 잔일은 부인 오희월 씨 몫이었고 ‘남자 일생 이런 게지!’ 바쁜 삶이었다.
1996년 전주목원예식장에서의 회갑잔치. 누구는 오라하고 누군 빼놓을 수 없어 초청하니 ‘속 좋은 춘원 김종준 회갑연이라네.’, ‘안가면 서운타 하지!’ 구름처럼 모여든 손님마다 먹고, 마시고, 춤추며 4월 긴긴 하루가 푸짐했다.
내외는 자녀들이 아직 젊어 ‘에라. 우리 돈으로 한 판 벌려주자’며 비용 무서워하지 않은 배포들이었다.
70넘어 “여보! 고생고생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터 젊어 못한 여행 다니며 즐깁시다.”, 부인 “참말이유? 그러면 좋고 말구요.” 뛸 듯이 기뻐했으나 아! 여행 길 나서기 전 서울대학교병원 문을 먼저 두드리더니 여름철 훌렁 하늘나라로 떠났다.
고향이 뭔가. 자녀 따라 나서지 못하는 85세 홀 노인은 잠이 들지 않아 자정이 넘어 수면제 반쪽을 먹어야 눈이 붙여진단다. 안타까움(장남 요사), 후회, 부인과의 사별, 몸은 열두 군데나 아프고… 이게 노인의 일상이다.
선출직 공직자 분은 혹 부모 친구 중에 이런 어른 있으면 전화 걸어보기 바란다. 조상들은 낙화도 쓸지 않았다. ‘춘산에 핀 꽃’ 어찌 봄에만 좋아하랴.
춘원 김종준 씨는 7남 1녀 중 3남으로 평생 부모를 모셨던 효자이다.
지금도 퍼줘야 마음이 편하다며 손님 오기를 기다린다. 금쪽같은 맏아들이 김왕태! 김왕태!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