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처지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감은 무척 컸다.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어 살 수 있을까? 극심한 슬럼프로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쯤 다 거쳐 가는 삶의 과정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난관처럼 여겨졌다. 그런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확인해주듯 다행히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좋은 여자를 만나 자식들 낳고 잘 살고 있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일상이 불안한 시기에 갈망했던 삶의 조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면 마음이 한 없이 겸손해질 법도 한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은 한귀로 흘려듣고 지구의 자전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듯, 현재의 삶이 본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듯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20대에 불투명했고 막연한 불안감의 원인이던 미래의 내 삶은 지금 너무 뚜렷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나마 내가 안도할 수 있는 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사회적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할 상황은 면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부모님께 체면치레는 했고 손을 뻗으면 살갗이 닿는 피붙이들이 곁에 있어 가끔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내가 누리는 과분한 삶에 감사함을 모르며 사는 나지만 주변 사람들이 가끔 고마운 경우는 적어도 내게 경계심이 잔뜩 묻은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을 때다.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나조차 순간적으로 반감이 든다. 그게 나 인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이 선량한 눈으로 봐준다면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한 자기비하이고 겸손을 가장한 위선이라 하더라도 진심이다. 주위 사람들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낼 때마다 비록 우주 전체에서 먼지처럼 희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에 불과할지 몰라도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어엿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 켠이 뿌듯해진다. 오늘처럼 하루 삶에 지쳐 머릿속이 텅 비고 아무런 생각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테두리와 익숙해진 생활이 불안함과 초조함도 없고 편안하고 안정된 기분을 안겨주어 좋다. 수납장에 깔끔하게 정돈된 옷가지와 물기 한 방울 없이 정리된 싱크대, 차곡차곡 포개어 담긴 그릇, 너무 흔한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다. 원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눈에 익은 풍경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과 스며든 땀방울까지 쉽게 감지해 낼 수 없다. 그러다 가끔 양말과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버려진 너저분한 거실과 신문과 책으로 뒤엉킨 소파, 개수대에 놓인 빈 그릇들, 바구니에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들을 보면 내가 익숙하게 여긴 풍경들은 원래부터 제자리에 있던 것들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청소기를 돌리고 집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우자 비로소 눈에 익은 질서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응당 당연히 여긴 정돈된 거실과 주방의 모습은 적지 않은 수고로움과 맞바꾼 대가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오래 전 그토록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떠올랐다. 그건 아마도 정리되고 정돈된 일상을 누리지 못할까봐 조바심 냈던 내 마음의 강박관념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집에 혼자 있게 되면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된 가사노동이 전면적으로 확대된다. 홀로 자유스럽고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다가도 움직임의 반경을 최소화했음에도 소파에서 뒹구는 책들과 뜯겨진 라면봉지들, 내동댕이쳐진 옷가지를 보며 왜 최초의 우주가‘혼돈’을 뜻하는 카오스라 불리는지 수긍이 간다. 쓰레기가 수북한 쓰레기장이 연상되는 건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럴 땐 내 머리도 거품을 뒤집어쓰고 흘러내리는 맥주잔처럼 잠시 혼란스러움이 솟아 일렁인다. 마음이 안정된 뒤에야 문득, 본래 자리에 정갈한 소품처럼 배치된 일상의 모습들이 분주히 오가는 손길과 부산한 움직임의 산물이며 숨 쉬듯 편안했던 내 주위 풍경도 생활의 단면들이 조금씩 쌓여 퇴적된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존재감과 부재가 더 절실하게 느껴질 때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있을 때다. 여유로운 고독감을 깊게 맛보다가도 갑자기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버린 착각 속에 혼자라는 낯설음이 당혹스럽게 여겨진다. 그리고 갑자기 평소에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일상의 굴레들이 낯익은 편안함처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이제 적당한 원숙함이 베어들만큼 나이를 먹어서인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과 피붙이들은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결국 뒤늦게 소중함을 알게 된 건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루해 했던 일상과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축이 되어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김태진=완주군청 문화관광과 관광마케팅팀
최종편집: 2025-06-24 17: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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