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고산 6개면을 중심으로 학교와 ‘고향 선생’을 알아본다. 선생이란 상대방을 높이는 말로 부르고 듣기 좋아 예전부터 널리 쓰이며 수도 많다. 지금은 학교 다니지 않은 사람이 없어 스승(선생) 얘기 나오면 끝날 줄을 모른다. 면마다 3∼4개 초등학교가 있었다. 운주(고당·금당·산북·운주), 경천(구제·가천), 화산(승치·춘산·운산·화산), 비봉(대치·수선·비봉), 동상(동봉·동광·산천분교·동상), 고산(양화·어우·삼기·고산동·고산)면마다 학교 많았고 마을마다 고향 선생 살았다. 지방교사 한 학교에서 2년씩 한 바퀴를 돌기 전에 정년 되던 시절, 국중금-박노룡-임선규-오귀선-구행서-김창완-전계천-국경호-김세종-오춘선은 대표적인 고향 선생이었다. 오춘선(吳春善) 선생은 삼기 출신(1923. 6. 20 생)으로 일본 시가켄(滋賀縣) 동천정군(東淺井郡) 현립(縣立) 호희중학교(虎姬中學校:5년)를 졸업하고(1944) 돌아와 고산면서기로(1944. 8∼1945. 10) 근무. 1945년 12월 31일부터 봉동초등학교 촉탁교사(→46. 10. 10)부터 시작하여 1946년 10월 15일 고산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1975년 1월 16일까지 삼기→가천→삼기→화산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1955년 4월 17일 초등학교 교감(32세)자격증 △같은 해 9월 10일 초등학교 교장 자격증을 땄으며 △원광대학교 문학부 국문과 4년을 졸업한 학력으로 1958년 8월 7일 중학교 교장자격증을 받은 초고속 승진자였다. 고향에서 근무하므로 생활이 안정되어 1964년 당시 고산면 삼기리에 토지 6,000평(19,800㎡)을 지닌 독농가(篤農家)이었다. 이러하니 사람마다 부러워했고 낙안오씨 집성촌에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만년에 지병으로 정년을 못 채우고 서세하자 지방민과 제자들이 슬퍼했다. 부인은 김순업(金順業). 3남 3녀 중 아버지의 그 집을 3남 오석철(吳錫哲) 군이 지켜 나온다. 넉넉한 사람일수록 농촌을 떠나는 현실에서 오석철과 하삼마을 손현배는 대단한 존재이다. 성장과정에서 배고른 적 없고 받은 토지가 있으니(우리고장 금수저) 처가나 친척의 조언 혹은 부인 요망에 따라 도시로 나갈 개연성이 누구보다도 많은 인물들이었다. 화산면 용소마을 산하농장 구윤회 군도 마찬가지이다. 오석철 군을 찾는 학자들이 많다. 하삼기 손일동 전 도의원이나, 종리 구행서 선생, 삼기 오춘선 교장 집 밥 먹어보지 않은 사람 없고, 아쉬운 이웃들이 찾아와 사정하면 곡식을 꾸어줬다. 그 부모의 땅을 지켜나가는 가족을 볼 때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며 추앙해야한다. 본인들은 ‘고향 선생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놓지 말 것이며, 주민은 고향을 지탱해 나가는 동료·기둥으로 앞세워, 1600년 고산역사 흠집 내거나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제 정신이 나도록 뜨끔하게 해줘야 한다. 예의와 인권이 사람의 최고 가치이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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