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혼례식장에 앉으면 미안한 사람이 있다. 완주군 화산면 종리 하룡마을 임화규 군이다. 50여 년 전 1970년대 초였다. ‘겸손한 사양’이 내 평생 미안함이 되어 죽어야 잊겠다. 제자 화규 군이 혼인 주례를 부탁하는데 자세한 얘기도 듣기 전 그의 청을 끝끝내 사양하자 뒤돌아설 수밖에. 교문을 나서는 걸 보니 아! 여자가 따라간다. 약혼녀가 확실하였다. 며칠 후 첫 주례를 맡은 건 익산군 성당면 황 아무개 혼인이었고, 최근(마지막?)은 동상면 높은 집 인정기 씨 아들 혼례식이었다. 주례를 볼 때마다 임화규 군 내외에게 죄지은 기분이다. 이는 내가 못나 지고 가는 짐이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국회의원, 교수, 상당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 주례를 도맡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학교 교사’가 어떻게 주례를 서느냐? 이런 강박감에 젖어 첫 부탁을 뿌리쳤던 것이나 이런 생각이 바보이었다. △하여튼 당시 졸장부이었음을 양인에게 고백하며 사과한다. △돌이켜보면 저명인사 제쳐두고 날 찾아온 선견지명이나 그 순수성 앞에 고개 들 체면이 못된다. 세시풍속이 바뀌어 국회의원 등은 공직자선거법 위반 범죄 행위(?)라니 50년 전 임 군은 시대를 바로 보았고, 그 순수성이 대단했건만 이를 깨닫지 못한 옹졸함을 평생 후회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세에 국회의원을 했으니 40대 나는 늙은 나이었다. 이런 졸장부의 첫 주례. 혼인날 주례 세울 사람이 없다며 땅이 꺼지게 걱정을 하더니만 급기야 나를 끌어 세웠다. 이런 일을 별꼴이라고 한다. 최근의 주례는 남 대신이었다. 2017년 겨울 국영석 고산농협장이 주례 부탁을 받고 허락을 했는데 마침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선거법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며 대신 나가달라고 해 대타로 섰었다. 지나놓고 보니 주례사 쉬운 때도 있었다. △신랑은 “첫째, 아궁이 재 잘 처내고, 불도 때 줘라”, “둘째, 아기 지저귀 잘 갈아주며 예뻐하라.”, “셋째, 술 적게 마시고 일찍 집에 들어오라.” 이러면 신부 측 자리에서 박수가 나왔고 △신부에겐 “첫째,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본분이니 참고 이겨라”, “둘째, 벙○리 3년→귀○어리 3년→○님 3년 어쩌구저쩌구…”, “셋째, 부귀다남이 이렇고 저렇고…” 15분이면 족했다. 저명인사·목사보다도 예식장 전속 주례 이 분이 가장 잘하더라. 그런데 지금은 예식장이 사양산업이 됐고, 주례 없이 본인들이 축가 부르며 친구들 놀이판이더라. 얼간이에 졸장부 남 앞에 서면 가슴이 벌렁거리는 공포증, 부족한 도전정신이 평생 임화규 군 앞에 미안한 마음이다. 사진을 보니 젊은 주례가 훨씬 좋더라. 임 군이여 진짜로 미안해! 나 회혼례(回婚禮) 주례는 자네가 맡아 주게나.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
최종편집: 2025-06-24 17: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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