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궁금하면 구이면 술박물관에 물어보라. 전북 이강주(梨薑酒)는 경자년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김정숙 내외분의 설(2020.1.25) 선물이었다.
양주 얘기는 몰라 못 쓰고 주막을 알아보는데 오늘 날 큰길가 주유소(注油所)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자동차 기름 떨어지면(모자라면) 넣어야 하니 주유소 중요한 시설이다.
△문경 새재 △강원도 대관령 △호남의 노령(蘆嶺)을 걸어 넘을 경우 배고프고 목마르며 밤에 잠자려면 들릴 곳이 있어야 했는데 이게 주막이었다. 오늘날 주유소처럼 길 따라 전국에 뻗쳐있었다.
완주군 고산(6개면)에서 가장 왕성했던 주막은 어디였을까?
조선시대 에 ‘신거리(新巨里) 주막(酒幕)’이 나온다. 지금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 오르기 직전의 요동마을이 소위 ‘신거렁이’·‘신그렝이’·‘싱그랭이’인데 어원은 어찌됐던 한자로 ‘신거리(新巨里)’요, 재 이름 ‘신거령(新巨嶺)’을 주목하자.
전주를 출발 진산(珍山) 방면을 찾는 경우 용진개바위→봉상→원산→당고개→용수마을→개앉음(경천)→가천→용계원 재까지의 90리는 하루 길이었다.
길 품팔이는 용계원 재를 넘지만 피곤한 사람은 쉬어갈 수밖에 없었고, 쉬어가는 요지 여기가 바로 ‘신거리 주막’이었다.
가는 행인뿐만 아니라 경상도나, 영동, 옥천, 금산 사람도 용계원 재를 넘어와 피곤한 몸을 부렸으니 밤이면 술자리, 코고는 소리 시끄러웠고, 더러는 투전(鬪牋)판도 벌렸다. 과객(科客), 보부상, 행인… 신분도 가지가지였다.
주모 밤이 깊도록 술상을 차리기에 바빴고, 아랫목 술 고이는 냄새와 행인들 땀내가 묘했으며, 보따리를 비고 자는 사람 ‘새우잠’에 자리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이었다.
새벽이면 시래기 국에 막걸리 한 대접, 이 기운으로 용계원 재[신거령]를 넘었다.
여행객 지나고 머무는 곳이니 신발도 갈아 신어야 하며 짚신 나무에 걸어두어 필요한 사람 쓰도록 했다. ‘신을 걸어 두었다’ 해서 ‘신거랭이’라는 풀이도 있다.
이제 그 주막은 사라지고, 용계원 재[신거령]를 넘는 사람 역시 귀하며, 화암사 불공 가는 불도도 드물다.
차 편히 가라고 일부 2차선 도로포장을 했으며, 개울에는 다리를 놓았고, 산림도로를 닦아 절까지 자동차가 오른다. 차 아니 다니면 주유소 망하듯이 ‘신거리 주막’ 흔적이 없다.
시골마을 점점 쇠퇴해 낭만이 사라졌다. 고산 장날에 막걸리 잘 팔렸고, 화산3거리, 고산3거리, 어우3거리, 봉상 구장터… 5리마다 주막이었는데 야! 별 세상이다.
완주군청 가까운 신강3거리에서 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없으니 교제(交際)도 사라지고, 추억거리도 없다. 이런 걸 공허(空虛)라고 한다.
조선팔도 이야기 주막에서 죄다 오갔다. 헤어지며 하는 인사 ‘다음 장날 주막에서 만나세!’, ‘그럴까?’…. 마치며 ‘신거랭이’는 한자 ‘신거령(新巨嶺:용계원 재)’일 것이다.
/이승철=칼럼니스트/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회 운영위원